글 박미경 l 사진 성민하
글 박미경 l 사진 성민하
홀트학교가 ‘숲’이라면, 방지혜 교사는 ‘나무’다. 62년 역사를 자랑하는 특수교육기관에 37년간 뿌리내린
한 그루 소나무와 같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그늘에서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과 그 부모들까지 쉬어 간다. 그 잠깐의 ‘쉼’이 세상의 편견과
맞설 ‘힘’이 되어 준다.
“이 동네가 제 고향이에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여기 와서 장애인 친구들과 놀다 가곤 했어요. 그게
특수교육을 전공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엊그제 이 학교에 부임한 것 같은데 세월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한 곳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답게 그에게는 ‘끈기’라는 무기가 있다. 느리지만 끝끝내 제 갈 길을 가는
달팽이처럼 한결같은 애정과 지지를 받으면 그 어떤 학생이라도 결국에는 성장한다고 굳게 믿는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맡은 방지혜 교사의 학급에는 그 믿음을 증명해 주는 그만의 독창적인 교수법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혜 달력’이다. 그가 직접 만들어 학급에도 붙여놓고 각 가정에도 나눠 주는 이 달력은
지적장애 학생들에게 날짜 개념을 심어주는 소중한 학습 도구다. 방지혜 교사는 달력을 ‘읽는다’고 표현한다.
오늘이 며칠이고 무슨 요일인지, 어떤 수업과 어떤 행사가 있는지, 학생들에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까닭이다.
“시간 개념을 익혀야 사회의 규칙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에게 달력을 읽어주기 시작했어요.
달력을 읽게 된 학생들은 학교에 가는 날과 가지 않는 날을 구분할 줄 알아요. 며칠 후에 있을 행사를
기다릴 줄도 알고요. 사회 적응력이 저절로 높아지죠.”
지혜 달력만큼 독창적인 수업 도구는 ‘언어 전달장’이다. 보통 알림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날의 활동
내용을 학부모에게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학부모와 학생이 언어 전달장을 함께 읽으면서 그날 활동한
것을 간단한 문장으로 써볼 수 있도록 구성하기 때문이다. 각 학생의 수준에 맞게 문항도 다르게 제시해
언어 전달장을 통해 말문이 트이거나 글자를 익히게 된 학생이 꽤 많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뜨겁다.
“오늘은 언어 전달장에 또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전에는 ‘오늘 하루 잘 지냈니’
정도만 물었다면 언어 전달장이 생긴 뒤로 아이와 더 구체적으로 대화를 나누게 됐다”, “언어 전달장을
같이 읽는 것이 ‘말하기’ 훈련으로 이어져 아이가 상황에 맞는 말이나 행동을 전보다 훨씬 많이 한다”
등 학부모들로부터 긍정적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강물처럼 차오른다.
“언어 전달장을 만드는 데 학부모님들의 도움이 정말 컸어요. 효과를 높일 방법을 찾기 위해 의견을
나눠가며 발전시켜 왔거든요. 조금 번거로울 법도 한데 늘 따뜻한 답변을 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해요.
저와 함께 수업하는 특수교육지도사, 사회복무요원과도 개선점을 수시로 의논해요.
함께여서 늘 든든합니다.”
‘긍정 언어를 담은 학급 특색 활동’도 그만의 창의적 수업법이다. ‘사랑해’, ‘축복해’, ‘고마워’ 등을 포함한
여덟 가지 긍정 언어와 ‘하하하’, ‘호호호’, ‘껄껄껄’ 같은 웃음소리로 만든 노래와 율동을 활용하는
수업이다. 동영상으로도 제작해 학생들이 집에서 부모님과 같이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리 반 학생이 모두 여섯 명인데 전달할 것이 있으면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면서 각자 따로 얘기
해줘요. 여섯 번을 반복해야 하지만 전혀 지겹지 않아요. 아이들이 보고 싶어 아침에 눈을 뜨면 가슴이
뛰고요. 저보다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요.”
만날 때마다 설레고 헤어질 때마다 아쉬운 마음, 우리는 그걸 ‘사랑’이라 부른다. 40년 가까운 경력의
베테랑 방지혜 교사의 가슴에 여전히 초심(初心)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