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성미 l 사진 이용기
글 이성미 l 사진 이용기
3세, 11세, 17세. 부산 연제구보건소 소장이자 외과의사인 신승건 소장이 심장 수술을 받은 나이다.
선천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난 그는 평생 한 번 견디기도 힘든 심장 수술을 성인이 되기도 전에
세 번이나 받았다. 환자라는 이름, 환자의 자리가 익숙한 삶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인공판막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그는 밤늦도록 맞은편 의학 도서관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을 보며 ‘나도
저곳에서 환자를 생각하는 삶을 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승건(承健)’, 건강을 잇는다는 이름 뜻처럼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순간이다.
꿈을 향해 성실히 한 발 한 발 나아간 끝에 신승건 소장은 바라던 대로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환자에서 의사로 첫 번째 꿈을 이룬 셈이다. 신승건 소장의 아버지는 기뻐하기에
앞서 아들에게 의사란 어떤 소명을 가져야 하는지를 일깨워주셨다.
“의사 국가고시 합격 소식을 전하자 아버지께선 덤덤하게 ‘그래, 의사답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고는 잠시 후 제게 물으셨죠. ‘의사, 판사, 검사···. 세상 사람들이 선망하는 이런 직업들의 공통점이
뭔 줄 아니?’라고요. 아버지는 스스로 답을 내려주셨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이 존재 이유라는 점이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거라’라고요. 환자의 고통이 없다면 존재할 리 없는, 의사라는 직업의 본질에 대해
일깨워 주신 것이죠. 덕분에 저는 의사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무게를 항상 생각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또 신승건 소장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베푸는 것이 아닌 돌려주는 것”임을
가르치셨다.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거나 베푸는 게 아니다. 환자였던 그가 의사에게
진료받았던 것처럼, 누군가의 헌혈 덕분에 무사히 수술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받았으니 마땅히 돌려주는
것뿐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다고 결코 자만해선 안 되며 의술 역시 돌려주는 일이라는 것을
신승건 소장은 가슴속에 새겼다.
의사가 되기 전까지 신승건 소장은 많은 도전과 실패를 거듭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그가
‘사서 한 고생’이었다.
신승건 소장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의사가 되려면 진료실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의료 혜택을 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 끝에 그는 환자를 위한 온라인
의료 상담 서비스를 개설했다.
2010년 당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었다. 신승건 소장은 스타트업을 창업해 의료 상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병원들과 협업해 시스템을 확장했다. 그러나 이 역시 한계가 보였다. 회사란 필연적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의사로서 역량을 키웠다. 인턴,
레지던트, 전문의 등 의사가 되는 과정을 밟으면 다시 길이 보이리라 믿었다. 실제로 외과 전문의가 된 후
그에게 새로운 길이 보였다. 바로 ‘공무원’이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덕분에 선천 심장병을 앓고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심장 수술 이력
때문에 병역 의무를 다할 수 없었고, 그것은 지난 세월 내내 마음의 짐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18년
초 외과 전문의가 되었지요. 그 무렵 아내의 직장 때문에 부산에서 살게 되었는데,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며 함께 어울려 지내는 부산이라는 도시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해운대구보건소에서 의무직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접했고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의사라는 첫 번째 꿈도,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두 번째 꿈도 이룬 셈입니다.”
신승건 소장은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제가 항상 세상과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결국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신념이 제 일상과 직업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제 주변부터 점점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고자 노력할 겁니다.”
진로 교육도 그러한 노력 중 하나다. 신승건 소장은 학생들이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바로 알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산시의 각 학교를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모교인 서울대명초등학교와 딸이 다니고 있는 서정초등학교에서도 학생들과 만나고 싶어요.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아 꼭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입니다.”
신승건 소장은 의사로서의 생각을 글로 적어 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2020년에는 그동안 쓴 글을 묶은 책
『살고 싶어서 더 살리고 싶었다』를 펴냈다. 신문사에도 자주 글을 보낸다. 환자로서 환자를 이해하는 의사,
환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의사, 또 그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려는
의사의 모습에 사람들은 감동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의사가 있습니다. 잘하는 것도 저마다 다르죠. 훗날 누군가 저에게 ‘너는 무엇을 잘하는 의사냐’
라고 묻는다면, 저는 ‘환자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의사’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환자에서 의사가 된 것이 제
인생의 첫 번째 도전이었다면, 다시 환자의 눈높이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제 또 다른 도전이자 꿈입니다.”
꿈을 이루는 방법을 묻자 신승건 소장은 “꿈을 잠시 잊는 것”이라고 답한다. 대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라는 것이다.
어떤 의사를 만나고 싶은가? 원하는 답이 있다면 그런 의사가 되고자 노력하라. 어떤 이웃이 되고 싶은가? 원하는
답이 있다면 그런 이웃이 되고자 노력하라. 신승건 소장은 원하는 답이 있는 곳을 향해 매일 나아가고 있다.
꿈이 있기에 그의 심장은 더욱더 힘차게 뛸 수 있고, 그를 둘러싼 세상도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신 소장의 아버지는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베푸는 것이 아닌 돌려주는 것”임을 가르치셨다. 환자였던 그가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뿐이다. 의술 역시 돌려주는 일이라는 것을 신승건 소장은 가슴속에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