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미경 l 사진 김성진
글 박미경 l 사진 김성진
타고난 여행자인 최수길 회원도 이 계절에는 잠시 여행을 멈춘다. ‘사는 곳’이 가장 눈부시기 때문이다.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그의 집은 그 자체로 ‘자연 속’이다. 사방을 에워싼 산도, 그가 가꾼 앞마당도,
색색의 옷을 매일 새롭게 갈아입는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을 마음껏 누리면서 고요 속의
소요(逍遙)를 만끽한다. 다시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쉼’이라는 이름의 봄이다.
“많은 국가를 다녔지만, 한국의 봄은 늘 아름다워요. 이 풍경을
좀 더 누리다가 곧 발칸반도로 떠납니다. 벌써 가슴이 뛰어요.”
최수길 회원은 2020년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 행정국장을 끝으로 40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에겐 ‘또 다른 시작’이 펼쳐졌다. 재직 중엔 시간을 쪼개야 했지만, 퇴직 후에는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발이 묶였던 2021년, 관광 대국 중 하나인 튀르키예가 가장 먼저 외국인 관광객
입국을 허용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셀카봉으로 동영상을 찍어 가족에게 보여줬더니, 딸이 유튜브를 해보라고 권하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던 때잖아요. 대리만족이라도 주면 좋겠다 싶어 유튜브 채널 ‘수길따라’를
개설했어요.”
‘수길따라’는 2024년 5월 기준으로 약 18만 명의 구독자가 시청하는 채널이 되었다. 업로드되는 영상마다
“사람 냄새가 폴폴 난다”, “같이 여행하는 기분이다” 같은 시청자 댓글이 줄을 잇는다. 그도 그럴 것이,
최수길 회원은 ‘구경’만 하는 여행이 아닌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교감’하고 그들의 삶을 ‘경험’하는
여행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기획하거나 연출하는 대신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같이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 바람처럼 자유로운 그의 움직임이 햇살처럼 따사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채널을 구독하는 분 중 80% 이상이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분들이에요. 은퇴 후 삶을 고민하던 때
‘수길따라’가 좋은 방향을 제시해 줬다고 합니다. 저를 롤 모델로 삼는 분도 있다 보니 더 부지런히
다니고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어요.”
여행가로서의 삶뿐 아니라 강연가로서의 삶도 최수길 회원이 의미를 두는 부분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여행으로 시작하는 행복한 은퇴 생활’을 주제로 틈틈이 강연을 하는데,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은퇴야말로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여행 덕분에 웃음과 설렘이 많아졌어요. 지금껏 50여 개국을 여행했는데, 선량하고 순수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저도 덩달아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그들을 만나러 갈 생각에 가슴이 뛰기도 하고요.
은퇴하신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 왔으니 훌쩍 떠나보라고요.”
여행을 떠나는 데 필요한 건 외국어가 아니라 ‘호기심’과 ‘용기’라고 그는 강조한다. 스마트폰 번역기
앱 기능이 워낙 뛰어나 언어는 생각보다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용기는
낯선 여행길에서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행에는 늘 변수가 있기 마련이니 마음을 느긋하게 먹는 게 중요해요. 혹여 비행기나 버스를
놓치더라도 남는 게 시간이라 여기며 그 상황을 즐기는 것이죠. ‘자유로운 마음’이란 다양한 경험
뒤에 얻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아름다운 인연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는 몇 달 전 미얀마 여행에서 만난 열한 살 소녀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꽃을 팔던 소녀는, 길모퉁이 천막집에서 이모와 함께 살았다.
“하루만이라도 소녀의 할아버지가 되어주고 싶어 그날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밥도 같이 먹고 새 옷도
사주면서 아이와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어요. 그 영상이 미얀마 언어로 번역돼 SNS에 소개되었는데,
200만 명이 넘는 미얀마 국민이 시청했다고 합니다. 영상을 시청한 한 독지가는 아이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기로 약속하기도 했죠. 저의 작은 행동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 보면서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새삼 생각하게 됐어요.”
‘수길따라’에는 몸이 아프거나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모습이 자주 나온다. 그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는
‘지독히 가난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아이들을 돕거나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에게는
어린 날의 자신을 보살피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빼어난 성악 실력을 갖고 있기도 한 그는 튀르키예 에페소의 원형극장에서 ‘How Great Thou Art’를 부른 적이 있다.
함께 있던 여행자들이 2절을 따라 부르며 한마음이 되었는데, 음악이 명실상부 세계의 공통어임을
가슴으로 깨닫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언제든 길을 나설 수 있도록 평소에 가방을 싸둬요. 큰 배낭이 15kg, 작은 배낭이 5kg 정도로 처음 여행
짐을 꾸릴 때보다 많이 가벼워졌어요. 여행은 삶에서 진정 필요한 게 무엇인지 가르쳐주기 때문이죠.”
설렘이라는 ‘나침반’이 그를 자꾸 나눔과 비움 쪽으로 이끈다. 지금 어느 방향으로 걷고 있느냐고,
그는 말이 아닌 삶으로 스스로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묻는다.
“지금껏 50여 개국을 여행했는데, 선량하고 순수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저도 덩달아 웃음이 많아졌어요. 그들을 만나러 갈 생각에 괜스레 가슴이 뛰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