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현충원의 시작은 국군 전사자를 안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1953년 동작동이 부지로 선정된 이후 국방부는 육군 공병대를 투입해 3년여에 걸쳐 묘역을 조성했다.
1956년 첫 문을 연 뒤 1968년 말까지 광장과 임야, 공원 행정 지역을 추가해 규모를 넓혔다.
개장 당시의 안치 대상도 전몰 군인에서 순국선열, 국가유공자, 애국지사, 순직 경찰과 소방공무원,
대한민국에 공로가 뚜렷한 외국인 등으로
거듭 개정된 국립묘지령에 따라 점차 확대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중앙에는 현충문과 현충탑이 자리 잡고 있다. 현충탑
안에는 11만여 전사자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이 탑을 중심으로
임시정부요인묘소, 독립유공자묘역, 국가유공자묘역, 장병묘역,
경찰관묘역 등의 묘역에 약 5만 위가 잠들어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이곳은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재됐다.
글 편집실
사진 및 자료 한국정책방송원, 서울기록원 근현대사아카이브
1958년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한 어린이
한 어린이가 현충일을 맞아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하고 있다.
1960년 현충 전몰장병 추도식
제5회 현충일을 맞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충 전몰장병 추도식이
열렸다.
1958년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한 어린이
한 어린이가 현충일을 맞아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하고 있다.
1960년 현충 전몰장병 추도식
제5회 현충일을 맞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충 전몰장병 추도식이
열렸다.
1967년 파월 전몰장병 안장식
3월 4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파월(派越) 전몰장병의 안장식이 거행되었다.
1975년 제20회 현충일 추념식
국무총리를 비롯한 외교사절, 유가족, 각계 대표, 시민, 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어린이들이 유공자 묘비에 헌화하고 있다.
1967년 파월 전몰장병 안장식
3월 4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파월(派越) 전몰장병의 안장식이 거행되었다.
1975년 제20회 현충일 추념식
국무총리를 비롯한 외교사절, 유가족, 각계 대표, 시민, 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어린이들이 유공자 묘비에 헌화하고 있다.
1981년 제26회 현충일 추념식
추념식에 참석한 학생들이 호국영령을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1985년 신년맞이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당시 염보현 서울시장이 신년을 맞아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했다.
1981년 제26회 현충일 추념식
추념식에 참석한 학생들이 호국영령을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1985년 신년맞이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당시 염보현 서울시장이 신년을 맞아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했다.
2016년 제61회 현충일 추념식
추념식에서 군악대,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장병들이 함께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
2016년 제61회 현충일 추념식
추념식에서 군악대,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장병들이 함께 애국가를 제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