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나누기
| 삶의 깨우침을 주는 멘토, 추억과 공감을 나누는 회원들의 이야기-
여는 글
나의 일을 사랑하는 마법, ‘나눔’
사람들은 직업 선택에 있어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일치하더라도 직업이 될 경우, 오히려 그 일을 싫어하게 될까 걱정하기도 하죠. 와튼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타인의 삶에 기여한다는 사실은 큰 보람과 함께 자존감을 높여주고 결국 그 일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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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K 예술가
보람으로 오래토록 이 길을 걷고도 싶다
단정한 푸념 | 박순숙 | 참 많이 왔구나 일반학교에 자리 잡은 통합교육 아찔했구나 돌아보니 기적이었구나 무모한 용기로 걸어왔구나 흐르는 물처럼 사는 건 참 어려운 것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매었고 간질을 하는 아이를 허벅지에 눕히고 하늘을 향해 소리 지르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한 방울 한 방울 모여 물줄기로 흘렀다 그러다 때때로 푸른 하늘 흰 구름 바라보듯 천진난만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람으로 오래토록 이 길을 걷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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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숨은 영웅
책 대신 총을 든 학생들과 그 곁에 함께한 선생님
고향과 나라를 구한 태백중학교 학도의용군과 박효칠 교사“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1951년 1월 9일 태백중학교 교정에 모인 학생들은 이렇게 외쳤다. 1·4 후퇴 이후 5일 만인 그날, 6·25 참전을 다짐 하던 순간이었다. 4일을 꼬박 걸어 찾아간 군대에서 체구가 작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몇몇이 입대를 거절당했다. 그들은 “38선만 돌파하면 학교로 가겠다”고 사정하며 버텼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찾은 이들은 고작 14~16살의 어린 소년들이었다. '내 나라와 내 고장을 지키 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이들의 호국정신은 부모의 간절한 만류도, 살을 에는 겨울바람도 막지 못했다. 흘러내리는 철모와 몸에 맞지 않는 군복을 입 은 10대 소년들은 그렇게 나라를 위해 전쟁터를 누볐고 18명의 전우를 떠나보내는 슬픔 속에서도 수많은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속에는 "학생들이 가는 곳에 선생이 있어야 한다"라며 이들의 곁을 지킨 박효칠 교사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있었다. 호국의 달 6월, 눈꽃처럼 순수하고 강철처럼 단단했던 학생 들과 교사의 애국심, 그 숭고한 이야기를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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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렸을 적에
호국보훈의 달 행사
해마다 6월이 되면 지역과 학교의 실정에 맞게 호국보훈의 달 행사가 열린다. 현충일 기념식을 하고, 국립묘지(지금의 국립현충원)를 찾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한 국가유공자의 묘소를 참배했다. 장병의 묘소 앞에 헌화한 다음 꽃에 물을 주기도 하고, 어떤 어린이는 자기 가족의 묘소를 찾아 명복을 비는 기도를 정성껏 드리기도 했다. 한편으로 국토를 지켜주고 있는 자매 부대를 찾아가 장병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자매의 정을 돈독히 하기도 했다. 장병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위문품을 전달하기도 했고, 장병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평소 자매 부 대 장병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아이들이 집에서 정성껏 싸 가지고 온 도시락을 나누어 주어 장병들이 기쁜 마음으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가슴 뿌듯해하기도 했다. 어떤 학교에서는 장병이 휴식을 취하는 막사에 TV를 설치해 주었더니 부대 인근 산에서 베어 온 싸리로 만든 빗자루를 학교 에 보내주어 여러 해 동안 청소를 하는 데 유용하게 쓰기도 했다. 이렇게 뜻 있는 위문 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평소 하루하루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도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느라고 불철주야 애쓰는 국군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고마움을 깨닫게 되었다. 그 밖에 도 반공 웅변대회, 포스터 그리기, 표어 만들기, 리본 달기 등 6월 한 달 동안 각종 호국보훈 행사가 열려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은 물론 국 군 장병의 노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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