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도에서 시작해 대회 지도까지 나서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가 청각장애인 동생과 수화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특수교사의 꿈을 품었다. 그리고 30년이
넘는 세월을 특수교사로 장애 학생을 지도하며 보냈다. 특수교육과를 졸업하고 첫 교직 생활을 시작한 곳은 보령정심학교다.
지금과 달리 1990년대 초반에는 장애인 거주시설 안에 있는 학교가 많았고, 대다수 학생이 장애 시설 원생이기도 했다.
많은 학생이 방과 후에도 한정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투는 일도 잦았다. ‘학생들이 좀 더 긍정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생활지도 차원에서 방과후 특기적성교육으로 육상과 탁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가족과 함께 즐길 취미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컸다.
“아이들에게 운동을 가르쳐 보니 긍정적 효과가 많아요. 스포츠를 통해 방과 후 여가 생활이 가능해졌고, 집중력도 예전보다
확연히 좋아졌거든요.”
취미로만 즐기는 학생도 있지만, 대회 출전을 통해 목표 의식을 갖는 학생도 생겼다.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상위권입상을
꾸준히 유지하더니, 1999년에는 노스캐롤라이나 세계특수올림픽하계대회에 2명이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쾌거를 이뤘다.
1990년대에는 시설이나 가정에서 장애 학생을 데리고 외국에 나가는 일이 드물었다.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2012년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하계대회
“한국, 특히 특수학교라는 작은 공동체에서만 지내던 학생들이 외국에 머물면서 외국인 학생들과 경기를 치르고, 그 지역
주민과 함께 문화생활을 해보는 기회를 얻었죠.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제 첫 마음이 결실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자신의 작은 노력이 학생들에게 더 큰 기회로 돌아오는 경험. 이는 그의 교직 생활을 관통하는 강력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수만 번 반복으로 꽃피운 장애 학생들의 꿈과 재능
2000년에 국립지적장애중심특수학교인 한국선진학교에 부임한 후에도 스포츠 지도에 주력했다. 개인차가 다양한 장애
학생들에게 스포츠 지도를 하는 일은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여정이기도 했다. 하나의 특기를 가르치기 위해 같은 내용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해야 한다.
“특수교육은 끊임없는 도전과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장애학생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아주 조금씩 어려운
것으로 과제를 세분화해 가르칩니다. 그리고 각 학생의 특성에 맞는 방법을 찾아 맞춤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장애 학생에게는 쉬운 활동일지라도 장애 학생들은 더 긴 시간을 들여 익힐 때가 많다. 하지만 장애 학생들은 반복 훈련에
잘 적응한다는 장점이 있다. 같은 내용을 1년 혹은 2년 넘게 반복하는 일이 절대 쉽지는 않지만, 차츰차츰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며 성장해 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그동안의 노고가 잊히는 기분이다.
“장애 학생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교사가 먼저 장애인의 벽을 깨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그리고 그들이
사회를 좀 더 경험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대한민국 스승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그동안 지도한 제자들은 물론 학부모들의 얼굴도 함께 떠올랐다.
“운동 한번 시켜보시죠?”라는 자신의 말에 잠시 망설이다가도 믿고 자식을 맡겨준 학부모들 역시 숨은 코치가 아닐 수 없다.
졸업 후 직장인 운동부에서 활동하는 제자도 많아졌다. 스포츠 교육을 하면서 그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학생들에게 ‘욕구’가
생겼다는 점이다. 스스로 달려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나서서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자고 말하고, 국가대표를 목표로
삼기도 한다. 그는 희망한다. 장애 학생들이 교과 학습 외에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더 큰 세상을 보고, 오롯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이를 위해 그 역시 계속해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