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터이자 놀이터가 된 마을
뒷산도 앞산도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거의 다 옷을 갈아입었다. ‘신록(新綠)’이라는 낱말의 뜻이 오감으로 스며드는, 5월
초순의 춘천이다. 이름마저 ‘봄봄’인 이 유치원은 김명희 원장의 새 부임지다. 홍천남산유치원에서 이곳으로 옮겨온지
이제 갓 두 달. 그곳에서의 ‘유쾌한 실험들’을 새 마음으로 다시 시도해 볼 생각이다. 틈틈이 되돌아가는 초심이 그를
번번이 ‘신입’으로 돌려놓는다.
“홍천남산유치원은 2020년 9월 1일에 개원한 공립단설유치원이에요. 마을 전체가 유아들의 배움터이자 놀이터였어요. 온
마을 주민이 유아들의 교사이자 가족이었고요. 인성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을 거기에서 배웠어요.”
마을 안으로 유치원을 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던 장전평리 주민들은 약 2,300m
2(700평) 밭을 유아들의 주말농장으로 선뜻
내줬다. 농사짓는 법도 기꺼이 가르쳐줬다. 농산물이 자라는 과정은 물론 기다림의 보람과 수확의 기쁨까지, 주말농장을
통해 유아들이 자연스레 배우도록 했다. 수확한 농산물은 ‘수업’과 ‘나눔’으로 연결했다. 그 가운데 ‘뻥튀기’ 체험은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김명희 원장은 자신들이 수확한 옥수수가 어떻게 강냉이로 변신하는지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직접 오일장을 찾아가 ‘뻥튀기 아저씨’를 유치원으로 초대했다. 오감이 열리는 유쾌한 수업이었다.
“만들어진 강냉이는 유아들이 직접 봉지에 담아 마을 어르신들께 떡과 함께 나눠드렸어요. 고구마를 판매해 얻은 수익금으론
유치원에서 청소며 방역을 해주시는 분들과 마을일을 도맡으시는 이장·반장님께 선물을 마련해 전달하기도 했고요. 평소에도
경로당을 방문해 노래 불러드리기, 어깨주물러 드리기, 실뜨기 놀이, 동화책 읽기 등을 어르신들과 함께하곤 했어요.
배움과 나눔과 놀이가 하나였죠.”
사랑이 사랑으로 되돌아오는 마법
첫 시도였던 뻥튀기와 달리 ‘팝콘’은 그가 오래도록 나눔에 활용해 온 먹거리다. 교사 초창기인 1990년대부터 그는 직접
만든 팝콘을 마을 장터에서 팔고, 그 수익금으로 선물을 준비해 경로당이며 양로원, 보육원 등에 전달하는 일을 유아들과
함께해 왔다. 지난해 수익금으로는 마을 어르신 단체 관광 때 소정의 용돈을 협찬하기도 했다. 그게 못내 고마워 마을
어르신들은 직접 산타가 되어 유아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셨다. 유치원 꽃밭은 물론 유치원 앞길을 꽃길로 가꿔주는 동네 주민들.
사랑은 사랑으로 되돌아온다는 걸, 유아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배워갔다.
“‘흥부와 놀부’ 동화 구연 수업 때는 마을 할머니가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마을 할아버지가 박 타는 시범을 보여주셨어요.
손수 수확한 박에 직접 만든 톱으로 박을 타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여태 눈에 선해요.”
인성이 곧 실력이라 믿는 그는 ‘마을과 함께하는 인성교육’ 외에도 ‘인성 동화 읽기’, ‘인성 동요 부르기’ 같은 인성 중심수업에
오래도록 힘써 왔다. ‘인성 동화’는 아이들의 사고력과 배려심을 길러주는 책들을 주로 선정한다. 한 달에 한 권씩 정해
반복해서 읽어주고, 집으로도 보내 학부모의 참여도 이끌어낸다. 협동, 소통, 효, 존중, 배려 등을 주제로 매월 진행되는 ‘인성
동요’ 부르기는 ‘고운 소리 맑은 소리’라는 마을 행사로 마무리된다. 1차 행사에는 마을 어른들을 초대해 유아들이 노래를 들려드리고,
학부모가 참여하는 2차 행사에는 마을 장터를 열어 주민들이 기른 농산물을 직거래한다. 마을 합창단도 초대하니 그 자체로 축제다.
공동체의 따뜻한 추억이 유아들의 성품에 차곡차곡 쌓인다.
“1990년부터 유아교육에 몸담았어요. 교사로 오래 일하다가 장학사, 연구사, 장학관 등을 거쳐 2020년 유치원으로 돌아왔고요.
올해는 인성교육뿐 아니라 환경교육도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에요. 교사가 가장 좋은 ‘교재·교구’라 믿기 때문에, 사람과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저부터 열심히 노력하려 해요.”
삼삼오오 놀던 유아들이 최고의 교재·교구인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