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과학 선생님
과학 실습 시간, 학생들 앞에 종이가 놓여 있다. 오늘 할 일은 에세이 쓰기. 학생들은 “에세이가 뭐예요?”라는 질문부터 꺼낸다.
에세이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쓸지 설명하는 사람은 책 읽는 과학 교사, 강정미 교사다.
강정미 교사는 1989년 주례중학교 첫 발령 후 34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어릴 적 소설가를 꿈꿀 만큼 책을 좋아했음에도 뜻하지
않게 과학 교사가 되었지만, ‘좋은 교사가 되겠다’라는 사명을 실천하는 데 교과목은 중요하지 않았다. 또 과학 시간에도 얼마든지
학생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강정미 교사는 “과거 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못한 어르신도 지혜롭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해’가 필요하며,
그 힘은 독서를 통해 기를 수 있다. 그래서 강정미 교사는 세상의 소리를 제대로 이해할 줄 아는 힘, 문해력(文解力)을 길러주기
위해 학교 안팎에서 융합 교육을 펼치고 있다.
“지식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첫째, 일상에서 지식을 발견하고, 둘째, 발견한 내용을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 수업 시간에 ‘과학 포토 에세이 쓰기’를 합니다. 학교 밖으로 나가 주변을 관찰하고, 흥미로운 것을 카메라에 담고,
경험을 바탕으로 에세이를 써보는 훈련을 하는 것이죠. 학생 대부분이 처음에는 글쓰기를 어려워해요. 그럴 때는 ‘오늘은 다섯
문장만 써보자’ 달래기도 하고, 팁을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터득한 지식을 시험으로 평가받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이것을 잘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밖에서도 유별난 책 사랑은 계속된다. 강정미 교사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부산행복독서교육지원단’으로서 독서 토론 캠프와
한마당을 운영하며 학생들이 책을 읽고 생각한 바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2002년생·2003년생 책가방 독서 자료’, ‘2020 중학교
1학년 자유학년제 진로 독서 워크북’, 2015년 개정 교육과정과 연계한 중학교 ‘한 학기 한 권 읽기’ 교과별 독서 활동 매뉴얼 개발 등에도
참여했다. 이를 통해 강정미 교사는 학교 현장에 책 읽는 분위기와 토의·토론 문화가 정착되도록 했다. 하지만 그간의 활동보다 가치 있는
것은 그가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늘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과학 교사이지만 책을 놓지 않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학생들에게
큰 가르침이 된다.
교사는 살아 있는 교과서이자 에너지를 주는 사람
강정미 교사의 곁에는 늘 책이 있었다. 국어 교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그는 평생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실컷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또 어릴
적 강정미 교사의 집에는 책만큼 식구도 많았다. 아버지는 해마다 어린 학생들을 집에 데려와 하숙을 시켜주곤 했기 때문이다. 조금 자라서야
그들이 가정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이가 들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강정미 교사는 한번 더
식구가 참 많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장례식장에 찾아와 목놓아 우는 아버지의 제자들을 보며 그는 숙연해졌다. “교사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라고 물으면, 강정미 교사는 아버지의 이름을 꺼내놓는다. 이처럼 아버지는 어버이이자 스승으로서 강정미 교사를 참스승의 길로
인도해 주었다.
“20년 전쯤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했어요. 그런데 그걸 보곤 아버지가 ‘교사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는 말과 행동이 다 교재다. 학생들에게
주는 메시지다’라며 혼을 내시더군요. 지금도 그 말씀을 항상 되새기고 있어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교과서가, 태도와
행동으로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해요. 학생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준다. 특히 손녀가 태어나고부터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
달라졌다. 항상 ‘다음 세대’를 염두에 두게 된 것이다. 손녀의 출생은 본래 관심을 두고 있던 ‘환경’ 분야 연구에도 기폭제가 되었다. 강정미
교사는 부산 지역 환경 교과서인 「부산의 환경과 미래」, 「부산의 환경과 미래-자유학년제 주제 선택 프로그램 워크북」을 집필하는 등
지역사회와 연계해 환경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다수의 교과서 제작에 참여해 본 일은 교사로서도 좋은 양분이 되어주었다.
“교과서를 집필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아요. 몇 번의 수정을 거쳤는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고치고 또 고쳐야 하죠. 우선 아는 것을 정리하고,
새로 배워야 할 것을 배워야 하고요. 그 다음에는 방대한 분야 안에서 학생 눈높이에 맞춰 덜어낼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이름으로 내는 책이 아닌 ‘교과서’이다 보니 표현 방식도 더 신중히 결정해야 했고요. 하지만 덕분에 제가 사는 지역인 부산의 환경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교과 지식도 더 깊어졌습니다. 힘든 만큼 참 귀한 시간이었죠.”
학생, 교사, 사회와 함께 자라는 성장형 교사
학교 안팎으로 역량을 펼치는 한편, 전공인 과학 수업에도 온 마음을 다한다. 특히 강정미 교사는 수업에 앞서 교육의 짜임새를 먼저 생각한다.
“저는 수업 시간에 단편적 지식만을 가르쳐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가 아닌 ‘교육과정’을 가르쳐야 하죠. 다시 말해, 무엇을 가르쳐서
어떤 효과를 낼지, 다음 배워야 할 내용과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킬지 그 과정을 짜임새 있게 만들어 전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연구를 통해 만들어 낸 것은 다른 교사들에게 아낌없이 나눈다. 2020년부터 강정미 교사는 과학교육활성화지원단으로 활동하며 ‘창의융합형
과학실 수업 자료집’, ‘중학교 블렌디드 수업 자료집’, ‘스마트 학습기기를 활용한 과학과 교수 학습 자료집’ 등을 개발 및 보급해 학생 개개인의
맞춤형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토양을 다졌다. 과학 탐구에 토론을 접목한 수업을 현장에 보급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해왔다. 그동안
나만의 수업이 아닌 우리의 수업을 위해 한 일들을 쭉 적어 보면 책 한 권이 될 정도다.
“지식만 습득하려 한다면 매일 여섯 시간씩 학교에 있는 것보다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더 효율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학교라는 장소를
만들고 학생들을 모아둔 이유는 이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지역,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그 안에서 서로 친해지는 법을 배우고,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죠. 또 나아가 지역사회에서 학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함께해
내며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강정미 교사는 지역과 학교가 더불어 살아가는 데 도서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미 여러 학교에서 시도하고 있듯, 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을 모으고 서로 생각을 나누는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정미 교사는 앞으로도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사고와
관계가 점점 확장되도록, 또 교사가 더 성장하도록 힘을 보탤 계획이다. “요즘은 ‘스승이 없다’고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해하고, 그 행복을 함께 누리고자 한다면 여러분 모두가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수상도 일선에서 노력하는 수많은 선생님을
대신해 제가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지금도 어디선가 우리 학생들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하고 계실 선생님들께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지고, 수업 공간이 좋아지고, 기술이 발달해도 학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선생님’입니다. 앞으로도 저 역시
좋은 선생님이 되도록, 그리고 제가 연구한 것이 좋은 선생님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그도 여전히 완성된 교사는 아니다. 아버지를 통해 여러 차례 ‘교사’의 의미를 재정의했고, 손녀가
태어나고 나서야 그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을 하게 되었듯 그는 앞으로도 계속 경험한 것을 양분 삼아 점점 더 성장할 것이다. 기꺼이 학생들과
함께 자라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