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 능력을 깨우는 주제중심 학생맞춤형 교육
운정초등학교를 처음 찾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한다. 학년, 반이 적혀 있어야 할 자리에 음악 놀이, 놀이 체육, 탐험, 생태, 역사 등의 주제가 적혀 있기 때문이다.
운정초등학교는 초등학교 최초로 주제 중심 학습 선택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 학급의 중심 주제가 그대로 반 이름이 된다. 이를 가능하게 한 사람이 바로 제11회 대한민국 스승상을 수상한 김문호 교사다.
“교육은 인간 내면의 잠재 능력을 깨워 제대로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주제 중심 학생 맞춤형 교육은 교육의 가치를 제대로 발현할 뿐만 아니라 학생과 교사의 니즈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수업 방식이에요.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해 수업을 듣고, 교사는 자신 있는 분야를 가르치며 각자의 역량을 키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2017년부터 주제 중심 학생맞춤형 교육을 시도하여 초등학교에서 기업가 정신 교육이 자리 잡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운정초등학교의 주제 중심 학생 맞춤형 교육은 공통 교육과정은 그대로 따르되 주 2시간, 연 68차시 동안 학생들이 스스로 관심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탐구할 기회를 제공한다.
주제 대부분은 미래 환경, 사회적 기업가 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김문호 교사는 업사이클링,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생태 등을 주제로 환경 교육을 실시하여 학생들이 기업가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돕는다.
「사회」의 경제와 환경, 「도덕」의 공감과 나눔, 「실과」의 지속가능한 미래 사회, 「수학」의 비와 비율 등 교과 내용을 재구성한 주제도 많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배움’은 ‘쓰임’으로 이어진다.
기업가 정신으로 세상에 올바른 쓰임을 만들다
김문호 교사가 맡은 학급은 ‘6학년 미래 반’이다. ‘미래 환경을 생각하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 기르기’가 이 학급의 주제이다. 김문호 교사가 생각하는 기업가는 스스로 하나의 업을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업’이라는 결과에 주목하기보다 자신이 목표한 것을 이루기까지 도전하고, 실행하고, 실패하고, 보완하는 ‘과정’에 목적을 둔다는 것.
그렇다면 김문호 교사가 기업가 정신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바른 기업가 정신 교육의 형태는 정삼각형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폭넓고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자신의 목표를 구체화, 현실화하는 과정을 거치죠.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보면 이와는 반대인 역삼각형 구조로 되어 있어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또 이뤄내려면 어릴 때부터 도전하고 경험하고 실패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동안의 활동과 효과로 미루어 보면 초등학교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이뤄내기에 이미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운정초등학교 학생들은 학교라는 경제 공동체 안에서 신제품 아이디어를 내고, 미니컴퍼니 형태로 제품을 만들어 판매·홍보하며, 수익금으로 더 나은 제품을 생산해 낸다.
예를 들어, ‘볼펜 하나에서 다양한 색이 나오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학생은 제작 방법을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해 자신만의 완성품을 만든다.
이것을 플리마켓에서 판매하며 소비자의 반응도 살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고 협동심을 기른다.
기업가 정신 교육이 세상에 뿌리내리는 그날까지
학교에 기업가 정신 교육이 안착하기까지 김문호 교사도 도전과 실패를 거듭했다. 그 결과 미니컴퍼니 애플리케이션 개발, 아이디어 도출 보드게임 제작, 환경 관련 사회적 기업가 교육 프로그램 마련 등의 성과도 얻었다. 김문호 교사의교육 철학에 동의하는 교사들이 지역 곳곳에서 기업가 정신 교육을 함께 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김문호 교사는 “동료 교사들 덕에 상을 받았다”라며 공을 돌린다. 교감 발령을 앞둔 그는 이제 기업가 정신 교육이 전국의 교육 현장에 제대로 안착하도록 프로그램을 계속 연구할 생각이다.
아울러 연구하는 교사들에게 길을 터 줄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제가 기업가 정신을 연구하게 된 것은 교사 10년 차에 ‘나는 교사로서 어떤 경쟁력이 있는가?’ 스스로 질문하면서부터였어요.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잘하고 싶은 것을 찾으며 이 자리까지 왔죠.
같은 생각을 지닌 교사들과 지원 프로그램도 만났고요. 여러분도 교육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다면 과감히 실행해 보세요. 그럼 정말 큰 세상이 열립니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에 나오는 구절이다.
지식의 쓰임을, 세상과의 나눔을, 환경의 비움을 생각하며 김문호 교사는 오늘도 힘차게 6학년 미래 반 교실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