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김수
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김수
허태균 교수는 문화와 사회, 성격을 연구하며 인간의 심리를 탐색하는 사회심리학자다. 한국인의
문화적 사고 특성은 그가 오랜 기간 관심을 기울여 온 연구 주제다. 2015년에 출간한 저서 『어쩌다
한국인』을 통해 문화심리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특성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기도 했다. 심리학적 개념을 최대한 반영하면서도 새로운 관점에서 한국 사회를 분석한 그의
해석은 대중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같은 한국 하늘 아래 살면서도 사람들의 생각은
제각각이다. 한국 경제가 고속 성장하면서 세대 간 격차는 더욱 커졌고, 이로 인한 소통의 문제도
생겨났다.
“세대차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오늘날 무엇 때문에, 얼마나 커졌는지를 한번 고민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불과 수백 년 전만 해도
증조할아버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나, 자녀, 손자에 이르기까지 몇 세대를 지나도 삶의 경험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100년 사이만 보면 놀라울 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한 것을 알 수 있죠. 지금의 노인 세대는 전기를 사용하기
어려웠던 시대에 태어나 이제는 각자의 손에 스마트폰 하나씩 들고 다니는 격동적인 시절을 보냈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만큼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허태균 교수에게 세대차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오늘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부딪히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수많은 정보를 접하며 일찍부터 회의주의자가 되어버린 젊은 세대와 달리,
격동의 시대를 보낸 기성세대는 비현실적일 만큼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봤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초고속으로 성장하며 기성세대의 희망에 부응했다. 하지만 고도화된 사회 속에 세대 간 자산 격차가
벌어져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젊은 세대도 늘었다. 이런 격차는 세대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을 두고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사실 불확실성은 지금보다 과거에 더 컸어요.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전쟁을 거쳐 불모지를 개척하면서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으니까요. 대신 아무
근거 없이도 ‘잘될 거야’, ‘할 수 있어’라는 믿음도 컸어요. 반대로 요즘 젊은 세대는 아는 게 너무 많아요.
그래서 앞날에 대한 예측도 쉽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안 될 것’이라는 체념이 앞서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갈등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인식 차이가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바라보는 기성세대는 고속 성장기를 보내며 수많은 기회를 독식한 행운의 세대다. 반대로 기성세대의 눈에 비친 젊은 세대는 좋은 환경에서 많은 것을 누려온 풍요의 세대다.
허태균 교수는 “미래에 대한 비현실적인 낙관이 있던 시절에는 꿈도 길게 꿨다”라고 말한다.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언젠가는 덕을 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길게는 그렇게 쌓은 덕이 자녀 세대에게까지 이어지리라
믿었다. 하지만 많은 것이 분명해진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는 미래보다 ‘지금’이 중요하다.
“기성세대가 젊었을 시절과 지금 젊은 세대의 경험을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젊은 세대가 넉넉하게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미래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내가 네 나이
때 그만큼 누렸으면 훨훨 날아다녔다’라고 말하죠.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짜증을 냅니다. 젊은
세대는 ‘가진 것’보다 ‘가질 수 있는 것’을 비교하면서 좌절하고 있으니까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은 기성세대가
더 많이 누렸다고 생각하거든요.”
관점의 차이는 소통의 문제로 돌아온다. 소통은 언어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언어를
의견과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도구로 여기지만, 소통이란 언어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심리학은 사회적인 맥락을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쉽게 설명하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연구하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저는 그렇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곧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이견은 사회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불통의 문제를 염려하면서도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데에는 소홀한 경향이 있다. 그저 상대방이 자기 말에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소통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여길 뿐이다.
허태균 교수는 “세대 간 소통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기 생각부터 내려놓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기성세대는 오래
살아온 만큼 경험이 풍부하다고 여기고,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정보를 많이 안다고
자신한다. 각자 잘난 부분을 뽐내다 보면 소통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이상이 있지만, 본능적으로
그럴 수 없어요. 그것이 심리학적 발견입니다. 그저 ‘이 사람은 바꿀 수 없구나’, ‘저 사람은 나처럼은 안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같이 살아가는 겁니다. 상대를 과도하게 신경 쓰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살아갈 때 오히려
사회 전체의 다양성은 늘어납니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개인주의화된 점을 세대 갈등의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를
둘러싼 숱한 갈등은 관계주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허태균 교수의 분석이다.
관계주의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이 자신과 같아질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 까닭이다. 그는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을 해소하려면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정은
안타깝지만 ‘포기’에 가깝다.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기대를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의미다.
그 어느 쪽도 완전히 옳거나 틀릴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선 긋고 살아갈
이유도 없다. 세대 간 소통 역시 ‘다름’을 받아들일 때 ‘다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