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백은하 여행 칼럼니스트
글·사진 백은하 여행 칼럼니스트
무작정 걷고 싶을 때가 있다. 일상의 잡념을 떨쳐버리기에 걷기만큼 좋은 명상은 없기 때문이다. 제주
머체왓숲길은 숲, 걷기, 명상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만끽할 수 있는 숨겨진 명소이다.
머체왓숲길은 2018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한 곳으로, 제주 자연의 전형을 보여준다.
초원 지대 목장과 연결된 숲은 계곡을 따라 원시 자연의 숲을 이루고 있다. ‘머체왓’은 이 일대가 ‘머체(돌)’로
이루어진 ‘왓(밭)’이라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숲 탐방로는 목장을 테마로 다양한 코스로 이루진 ‘머체왓숲길’(총 6.7km)과 서중천과 주변의 작은 하천을
중심으로 다양한 잡목이 우거진 ‘머체왓소롱콧길’(총 6.3km), 그리고 제주에서 세 번째로 긴 하천인 서중천을
따라 용암이 만들어낸 기암괴석을 볼 수 있는 ‘서중천탐방로’(총 3km)’ 등 세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완만해 인기가 많은 머체왓소롱콧길을 걸어본다.
머체왓소롱콧길은 편백나무 숲과 습지, 하천을 만날 수 있는 코스로, 소롱콧은 이 일대 지형이 마치 작은
용을 닮았다고 해서 유래한 지명이다.
탐방로 초입 느영나영나무와 초원을 지나면 바로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잡목이 우거진 숲을 지나 넓은
목초지인 사슴목쉼터를 지나면 편백나무 숲에 도착하는데,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울창하게 뻗은
나무가 만든 그늘에 서늘한 움막 쉼터가 있다. 숲을 따라가면 나오는 돌담길은 농경지와 목장지를 구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중간 지점 이후에는 잡목 숲과 계곡이 이어지는데, 표지판이 없고 길이 헷갈리는 지점이니 사람들의 흔적을
잘 살펴 길을 찾아야 한다. 걷기에 지쳐갈 때쯤 만나게 되는 서중천전망대를 지나 700m를 더 가면 탐방
길이 끝나고 느영나영나무를 다시 만나게 된다. 느영나영은 ‘너하고 나하고’라는 의미다. 느영나영나무
아래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과 함께 목가적인 평화로움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숲 명상을 마치고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졌다면 한라산의 맑고 차가운 물에 지친 발을 담가보자.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얼음같이 차고 맑은 물이 흐르는 돈내코유원지는 작은 연못과 폭포, 계곡 양편을 덮은 울창한
난대 상록수림 등 주변 경관이 빼어나 여름 피서지로 이름난 곳이다.
이곳은 1994년 접근로가 열리기 전까지 도민만 알던 숨겨진 장소였는데, 최근에 스노클링 명소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평일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입구에서 오른편 산책 길을 따라 20여 분 올라가면 원앙폭포로 이어진다. 사이좋게 떨어지는 두 줄기의
폭포는 금실 좋은 원앙 한 쌍이 살았다 해서 원앙폭포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에메랄드빛 연못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깨끗하고 투명하다.
한여름에도 물이 차고 시원해 더위를 식히기에 그만이지만 수심이 깊어 반드시 구명조끼와 튜브를 착용해야
한다. 샤워장이 따로 없어 옷을 갈아입으려면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지만, 물이 워낙 깨끗해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후 그냥 말려도 될 정도다.
오후 해가 질 무렵 구두미포구와 섶섬으로 향한다. 서귀포 보목에 위치한 구두미포구는 소형 보트만 정박
가능한 작은 포구다. 희귀 식생으로 보호받고 있는 섶섬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며, 아름다운
제주의 석양을 담을 수 있는 사진 명소이다.
‘구두미개’ 또는 ‘구두리’라고 부르는 방파제가 포구 동쪽으로 쌓여 있고, 섶섬을 마주하고 오른쪽 뒤편으로
올라가면 전망대와 쉼터가 자리해 탁 트인 바다와 함께 섶섬을 아주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포구
앞바다에는 가끔 돌고래가 출몰하기도 한다.
또 다양한 물고기와 연산호 군락이 있어 다이빙 포인트로도 인기다. 구두미포구와 섶섬의 거리가 가까워
예전에는 젊은 청년들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다지기 위해 그 사이를 헤엄을 쳐 오가곤 했다.
구두미포구는 올레길 6코스에 속해 이곳을 지나는 올레꾼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뱅에돔이나 다금바리 같은
다양한 어종이 잡혀 낚시꾼도 즐겨 찾는다.
아직 덜 알려진 서귀포의 작은 구두미포구에서 제주의 푸른 바다와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일상의 피로를
풀고 새로운 마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