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황연희
‘디토앤디토’ 취재기자 및 총괄이사이며,
신구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겸임교수다.
‘에이지리스(ageless)’는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의미한다. 연령대별 인기 소비 품목이나 취미, 라이프스타일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현대사회 트렌드로 부상했다.
특히 패션에서는 성별 구분이 없는 젠더리스(genderless) 트렌드처럼 연령 구분이 무의미한
에이지리스 트렌드가 브랜드를 기획하는 핵심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패션 디자이너 베라 왕(Vera Wang)은 올해 75세 나이지만 여전히 데님 미니스커트와
슬리브리스(소매가 없는) 셔츠를 소화할 만큼 젊게 삶을 즐긴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중반
닉스 청바지 론칭으로 패션계를 주름잡은 홍선표 디자이너가 베라 왕에 대적할 만큼 젊은 패션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더뉴그레이는 시니어 비즈니스를 추진하면서 건강, 복지, 교육, 여행 대신 젊은
패션을 선택했다. 2018년부터 700여 명의 ‘우리 아빠 프사 바꾸기’를 추진했고, 이를 통해
인플루언서로 부상한 그룹이 ‘아저씨즈’다. 시니어계 BTS로 통하는 아저씨즈의 평균 연령은
64.7세로 다수가 패션모델로 등장할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패션 스타일로만 본다면
그들에게 ‘아저씨’, ‘아줌마’ 호칭을 붙이기엔 어색할 정도다.
에이지리스 패션은 연령대를 초월한 패션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젊은 세대가 나이
들어 보이는 패션을 선택하기보다는, 중장년층이 젊어 보이는 패션을 지향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 것이 일반적이다.
베라 왕(출처: 인스타그램)
홍선표(출처: 인스타그램)
베라 왕(출처: 인스타그램)
홍선표(출처: 인스타그램)
에이지리스 패션의 유행에는 젊은 라이프를 향유하는 액티브 시니어의 증가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시간적·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50세 이상의 액티브 시니어의 비중이 증가했고,
이들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패션을 향했다.
50세 이상 세대는 소비 패턴을 나이로 구분하거나, 나이를 드러내는 용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10년 전만 해도 50~6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여성복은 마담 존이나 엘레강스 존으로 구분했고, 그곳에 입점한
브랜드를 시니어 브랜드, 실버 브랜드로 칭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드러나지 않는 ‘클래시 존’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했다.
현대백화점 염지훈 부장은 “백화점에서는 수십 년 동안 여성 패션, 남성 패션 그리고 어덜트 존, 시니어 존 등 성별,
연령을 기준으로 브랜드를 구분했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구분을 대신해 브랜드 성격에 따라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소비자를 연령으로 타깃팅하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라고 말했다.
패션 브랜드의 브랜딩 전략에서 전통적인 고객 타깃팅 기준은 연령이었다. 2030 여성을 위한 캐주얼, 2535를 위한
비즈니스 캐주얼웨어, 4050을 위한 액티브웨어 등 브랜드가 공략해야 할 소비자를 연령으로 구분 지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연령을 뛰어넘어 다양한 소비층을 겨냥하는 에이지리스 패션을 추구하는 패션 브랜드가 등장한
것이다.
스파오는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캐주얼웨어가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누구나 부담 없이 취향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에이지리스 콘셉트를 내세우며 아동부터 40~50대까지 아우르는 상품군을 제안하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이러한
콘셉트를 확실하게 어필하기 위해 수원에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패밀리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닥스도 2022년부터 에이지리스 명품 브랜드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브랜드 메인 타깃이 60대 이상으로 높아지면서
특유의 클래식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 연령층을 타깃으로 하는 패션 브랜드로 정체성을 재정립했다.
또 MCM은 지난해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윤복희와 함께 ‘에이지리스’를 주제로 한 화보를 공개했다. MCM은 그동안
나이와 상관없이 독창적 감성으로 스타일을 표현하는 이들을 위한 제품을 선보였고, 윤복희 씨를 모델로 등장시켜
세대 간 경계를 허물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 패션 제품을 구매할 때 연령을 물어보는 것은 오로지 유아동복뿐이다. 패션을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닌 직업, 소득수준, 특정 취향이나 관심사, 행동 패턴 등을 가진 브랜드 페르소나**다. 사회가 규정하는 세대에서
벗어나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패션 브랜드가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 메이크오버(makeover): 사람이나 장소의 모습을 개선하기 위해 하는 단장
** 브랜드 페르소나(brand persona):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이상적인 고객을 묘사한
가상의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