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달러, 주식, 부동산 등 제도권 자산이 불안할 때 비트코인은 대체투자의 성격을 띠면서 ‘디지털 금’으로도
불리고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아직 합법적 자산이 아니다. 엘살바도르와 같이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비트코인은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실상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없어 자산으로서의 안정성도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불법적인 자산도
아니다. 가상통화 거래소를 통해 거래가 이뤄지고 있고, 이 거래소는 시중은행과 계좌가 연동돼 있다.
심지어 미국과 홍콩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됐다.*
기초 자산은 아직 합법이 아니지만, 이를 수익증권으로 만들어 정규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은 합법이 됐다.
합법이 아니다 보니 자산에 대한 과세가 이뤄지지 않고, 어떻게 거래되는지 파악하기도 힘들다. 합법도,
불법도 아닌 이 모호한 지점은 투자자에게 새로운 투자 기회를 주고 있다.
규제가 없다 보니 투자에 제한이 없고, 이로 인한 엄청난 변동성은 큰 수익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검은돈은 금융 당국을 피해 활개를 칠 기회를 얻게 됐다. 비트코인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인터넷만
연결되면 24시간 365일 거래가 가능하다. 돈세탁하기에 이만한 자산이 없다.
*출처: 연합뉴스(2024. 04. 24.)
하라다 마사토 감독의 영화 ‘배드랜드’는 비트코인의 두 얼굴을 극명히 보여준다.
‘네리’는 보이스피싱 사기단에서 ‘3루 코치’로 불린다.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거두어
수거책을 지휘한다. 네리에게는 이복동생 ‘조’가 있다. 조직의 우두머리로는 ‘다카키’가 있다. 그는
오사카 펠로십 사업 협의회를 차리고 노숙자, 기초생활수급자 등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위장
결혼 등 각종 사기 행각으로 부를 축적했다. 우연한 사건에 휘말린 네리와 조는 다카키를 살해하고,
그의 자산을 가로채기로 한다. 다카키의 자산은 예금과 주식을 포함해 3억 엔에 이른다. 오사카 경찰의
추적을 피해 이를 해외로 빠르고 안전하게 빼돌릴 방법은 뭐가 있을까?
네리가 택한 방법은 비트코인이다. 네리는 현금으로 비트코인을 매입한 뒤 전자지갑에 넣어 보관하고,
인도네시아에서 비트코인을 현금화하기로 한다. 여기에는 도박장 장부 관리자 ‘시라사와’의 도움이
필요하다. 시라사와는 네리에게 수수료를 요구한다. 수수료율 10%냐 5%냐, 그것만 문제다.
현금은 물론이고 금, 파생상품, 부동산 등 모든 자산은 거래 과정이 금융 당국과 과세 당국에 노출된다.
국경을 넘으려 한다면 상대국의 금융 당국과 과세 당국도 들여다본다. 그 때문에 국경을 오가는 자산
거래를 정부 기관이 모르게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매입한 뒤 전자지갑에 넣어두면
아무도 모른다. 한도 제한도 없고 인출도 세계 어디서든 가능하다. 전자지갑의 존재를 알았다 해도
비밀번호가 복잡해 해킹하기가 어렵다.
‘비밀 화폐’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비트코인은 1998년 중국 컴퓨터 엔지니어 웨이다이가 사이버
펑크들의 메일링 리스트에서 처음 언급했다.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는 최초의 비트코인 설계와
개념 증명을 암호 작성술 메일링 리스트에서 공개했다. 이후 수많은 개발자가 커뮤니티에 합류하면서
비트코인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비트코인은 기존 중앙은행이 주도하던 통화체제와 금융권이 독점하는 금융 생태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기존 통화 질서에 위협을 준다는 시각도 있다. 비트코인이 전 세계에서 통용되면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어 미국은 이를 마냥 반길 수 없다. 중국도 비트코인에 부정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패권에 균열이 가는 것은 반갑지만 중국 정부의 내부 금융 장악력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각국이 마련한 대안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인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다.
CBDC는 가상화폐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화폐를 말한다. 비트코인과 달리
중앙은행이 보증한다는 점에서 안정성이 높고 자금 흐름 통제가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비트코인은 다른 가상통화와 달리 채굴량이 4년마다 절반씩 줄어드는 이른바 반감기가 있어 앞으로도 가격이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규제 당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혹은 내부 시스템 에러가 발생하면
비트코인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구름 같은 자산이기도 하다. 자금세탁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고, 블록체인
역시 아직은 완성된 기술이 아니다. 비트코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배드랜드’ 속 네리는 과연
비트코인을 현금화하는 데 성공할까.
**출처: 가상통화 거래소 빗썸 ‘자주 묻는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