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지연 l 사진 성민하
글 박지연 l 사진 성민하
순수하고 맑은 얼굴이 빛나는 김예원 교사. 나태주 시인과의 인연은 대학 시절 좋아하는 영시를 적은 팬레터를 보낸 것이 계기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회신이 왔고, 두 사람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실 한 번의 만남은 쉽게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만남이 긴 시간 이어지고, 50년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편안한 친구가 되었다는 점에서 놀랍다.
최근 나태주 시인과 김예원 교사가 함께 출간한 『품으려 하니 모두가 꽃이었습니다』를 읽어보면 두 사람이
참 좋은 친구 사이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억지로 끼워 맞춘 ‘친구’라는 타이틀이 아닌,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받아들여지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친구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큰 오해 없이 잘 이어지는 사이라고 생각해요. 내 의도와는 다르게 말과
행동이 받아들여지면서 오해가 쌓이는 관계도 있잖아요. 좋은 친구는 서로의 행동을 원래 의도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거든요.”
핵심을 꿰뚫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답변이다. 우리는 가끔 상대의 말과 행동을 의도와 달리 곡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할 때가 있지 않은가.
“나태주 시인님은 제가 좋아하는 시를 좋아해 주는 분이에요. 공통점도 많고, 성격이나 취향도 비슷해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워요. 또 남에게 대우받으려 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배려해 자발적으로 존경을
이끌어내는 분이에요. 저는 그분의 시에 제 마음을 맡기고 파도를 타는 느낌이 정말 좋아요. 친구가 되어
가장 좋은 점은 아직 종이 위에 써지지 않은 따끈따끈한 시를 먼저 들을 수 있다는 거예요.”
『품으려 하니 모두가 꽃이었습니다』는 김예원 교사에게 울림을 준 나태주 시인의 말과 일화를 추려서 엮은 책이다.
책에는 인생 선배로서 나태주 시인의 어록이 가득한데, 누구나 가슴에 새기고 싶은 깊은 울림이 있는 말이다.
“제가 지난 6년 동안 나태주 시인님을 만나면서 배운 가르침 중 가장 먼저 꼽고 싶은 건 ‘너를 생각하는 마음 갖기’예요. 그분의 시는 유난히 ‘너’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요. 지난해에 함께 시선집 작업을 했는데, 시 중에 ‘너’가 들어간
시만 뽑아도 될 정도로 나태주 시인님은 늘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과 경청을 하시죠. 저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세요.”
어쩌면 50년 세월을 넘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나보다 너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 시인의 시구는 모두 ‘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뽑으려 하면 모두가 잡초이지만, 품으려 하니
모두가 꽃이었습니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도 수많은 ‘너’를 품고 위로한다.
“그분과 제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이해, 수용하는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나의 방식과 상대방의 방식이 다르지만 서로 잘 경청하고 이해해 주면 함께 성장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나태주
시인님은 젊은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의 스승이라며 항상 젊은이들에게 배우려고 하세요. 저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지만 오히려 학생들에게 배울 때가 많거든요. 그분과 저는 모든 사람에게 배우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도
공감대가 많아요.”
한 사람은 무조건 베풀고, 다른 한 사람은 무조건 받기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는 오래 이어지기 힘들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50년의 나이 차이는 편안한 친구가 되기에 쉽지 않은 장벽이다.
김예원 교사는 나태주 시인에게 문학뿐 아니라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하지만, 나태주 시인 또한
김예원 교사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저를 만난 후 나태주 시인님이 시를 쓰실 때 달라졌다고 느끼는 게 있어요. 가령 예전엔 ‘처녀’라는 표현을 많이
쓰셨는데, 제가 요즘에는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이후에는 처녀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으시더라고요. 대신 ‘여자’나 ‘아이’를 많이 쓰시죠. 또 요즘 유행하는 MBTI(심리유형검사)를 잘 모르셨는데 제가
해보자고 권유해 직접 문항을 하나하나 읽어드리며 검사를 했어요. 막상 당신의 성격 유형을 아시고는
좋아하시더라고요.”
나태주 시인은 김예원 교사에게, 김예원 교사는 나태주 시인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사이인 만큼 더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좋은 친구는 세대와 관계없이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쳐 더 성장하게 만드는, 나태주 시인과 김예원 교사
같은 사이가 아닐까.
“뽑으려 하면 모두가 잡초이지만, 품으려 하니 모두가 꽃이었습니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도 수많은 ‘너’를 품고 위로하는 시다. 어쩌면 50년 세월을 넘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나보다 너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