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라희 l 사진 신지혜
글 정라희 l 사진 신지혜
KAIST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과학 인재가 모여드는 곳이다.
하지만 수재라고 인정받는 이 학교 학생들에게도 마음의 어려움은 해결하기 힘든 숙제였다.
2011년에는 학생들이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모으는 가운데, 학생들이 먼저 ‘인성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이덕주 교수는 “공학자로 살아온 제가 인성교육을 하려니 당시에는 막막했습니다. 학생상담센터
담당자를 만나보니 ‘센터를 찾는 학생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상담실에 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인성교육을 아예 교육과정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막상 정규과목으로 개설하려니 담당 교수 섭외가 문제였다.
그때 KAIST 리더십센터 관계자가 “교수님이 명상을 해오고 계시니 직접 가르쳐보세요”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해오던 명상을 막상 수업으로 하려니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명상의 효과를 직접 누렸기에 학생들이 원한다면 이보다 적합한 인성교육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렇게 가을 학기를 시작하면서 ‘지금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는 3학점 특강이 KAIST에 개설되었다.
이덕주 교수는 이제껏 해오던 항공우주공학과 전공수업과는 사뭇 다른 주제의 명상 수업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수업을 준비했다.
“이공계에서 인성교육을 위해 명상 수업을 한 사례는 글로벌 단위에서도 흔하지 않습니다.
공학도들에게 어떻게 명상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 깊이 고민했고, 관념적인 접근 대신 학문적 용어로 설명하기로 했습니다.
뇌과학과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님을 초빙하면서 융합 수업으로 확장했어요. 마음을 돌아보는 명상은 세상을 이해하는 여정이기도 하니까요.”
수업의 목표는 학생들의 ‘행복한 삶’이었다.
이를 위해 이덕주 교수는 학생들이 자신의 마음을 살피며 자신을 먼저 알아갈 수 있도록 ‘마음의 정의’, ‘자기 돌아보기’, ‘마음빼기’, ‘뇌과학과 명상’ 등의 수업 과정을 단계별로 진행했다.
“행복은 내면의 성찰에서 시작됩니다. 학생들에게 자기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또 그 방법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이는 막연하게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이미지로 만들어 마치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것처럼 뇌에 저장하는데요, 이렇게 뇌가 찍은 이미지에는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진은 가짜이기에 뇌에 저장된 마음의 사진도 가짜일 뿐입니다. 이러한 가짜 사진을 스트레스라고 일컫기도 하고요.
수업을 통해 진행했던 ‘마음빼기’ 명상은 바로 스트레스를 빼는 것입니다. 가짜 사진을
떠올리고 지우는 일을 통해 마음을 버리고 자기 성찰을 하는 것이지요.”
이덕주 교수는 마음빼기 명상을 하면 뇌파도 안정적으로 변한다고 전한다. 물론 복잡한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이를 버리는 과정은 쉽지 않다.
때로는 인내해야 할 때도 있다.
“여행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진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안에 가라앉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비슷한 상황에 마주하면 과거의 부정적인 마음이 다시 올라오기도 하죠.
명상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기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마음을 없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그 원리가 있습니다.”
나쁜 기억은 물론 좋은 추억도 때로는 버려야 할 집착이다.
실제로 당시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은 어린 시절 칭찬받은 기억이 현재의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행복의 기준을 과거에 맞추면 지금이 불행해질 수 있는 셈이다.
마음의 위기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KAIST에서 시작한 명상 수업은 세계적인 온라인 교육 플랫폼 코세라(Coursera)로 확장되었고, 2018년 개설한 강의 ‘명상, 삶에서 목표를 이루는 방법’은 전 세계 학생에게 호응을 얻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개설한 강좌는 팬데믹을 거치며 수강생이 급증했습니다. 온라인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이를 통해 ‘마음은 버릴 수 있다’와 ‘명상에는 방법이 있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인생에서 지우고 싶을 만큼 힘겨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명상을 하게 된 것은 저에게 무척 큰 행운이었습니다.”
어느덧 명상 수업은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도 접목되고 있다. 이덕주 교수는 “자유학기제를 통해 일선 학교에서도
마음빼기 명상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전한다. “아동이나 청소년들도 또래 관계나 진로 등의 문제로 스트레스가
큽니다. 5분 생활 명상 교수법이 개발되어 이미 큰 효과를 보고 있어요.
원하는 마음이 되기 위해 방해하는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지 적어보게 하거나, 일생 연대기를 적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집니다. 교육청 장학사와
초등학생 대상 명상 수업에 참관한 적이 있는데, 어릴수록 명상 시간에 비해 효과가 크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한 번은 중학교 1학년과 2학년을 대상으로 1차시 수업을 진행했는데, 10분 내외의 명상에도 학생들이 ‘편안하다’는 반응을 보여 놀랐습니다.”
명상 수업을 받은 수강생들의 공통점은 ‘자신감이 생겼다’는 데 있다. 한때 위기에 직면했던 KAIST 학생들의 변화도 두드러졌다.
방황하기보다 행동하며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학생도 늘었다.
“내 삶을 이렇게까지 바꿔놓은 수업은 지금까지 없었다”라고 고백한 KAIST 학생의 강의 후기가 새삼 눈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