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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삶의 즐거움

생생지락(生生之樂)

제주의 역사와 가치를 안내하는 ‘질토래비’

사단법인 질토래비 문영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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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친 후, 문영택 이사장은 제주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질토래비 길라잡이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제주의 숨겨진 역사를 발굴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교사에서 문화 전도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문영택 이사장의 이야기는 은퇴 후에도 나눔과 봉사로 빛나는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글 이경희 l 사진 성민하

제주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온 사람

제주에 관광도시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 있다. 사단법인 질토래비의 문영택 이사장이다. 그는 국립공주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유학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제주를 떠나본 적이 없는 제주 토박이이다.
교사로서 보낸 40여 년의 세월은 유의미한 여정으로 가득했다. 프랑스어 과목을 담당했던 그는 글쓰기로 아이들과 활발히 소통했다. 1997년에는 수필가로 등단하며 문인으로서도 이름을 알렸다.
“문화와 역사에 늘 관심이 많았습니다. 교육의 언어는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편식 없이 골고루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시도 들려주고, 샹송도 알려주고, 역사 이야기와 옛이야기도 해줬습니다. 교직 생활의 마지막 시기에는 우도의 통합학교에서 중·고등학생과 함께 역사문화 탐험대를 조직해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의 역사문화를 일주일에 한 번씩 탐험하는 시간도 가졌지요.”
제주의 정체성 교육에 앞장서는 교장 선생님으로 이름 높았던 문영택 이사장은 2016년 5월, 제주교육청에서 수여하는 스승의 날 대상에서 홍조근정훈장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40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할 즈음, 그는 제주의 역사문화를 다룬 수필집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발간했는데, 이 책이 세종도서*로 선정되며 뜻밖의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바로 ‘질토래비’와의 인연이다.
“전혀 모르는 젊은이들이 저를 찾기 시작한 거예요. 제 책을 읽고 제주의 역사문화를 공유하는 단체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름을 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청년들과 모임을 하다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것이 질토래비의 탄생 배경이에요. 2018년도의 일이지요.”
*세종도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매년 발표하는 도서 선정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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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역사문화의 길라잡이, 질토래비

질토래비는 이승에서 죽은 사람을 염라대왕에게 안내하는 저승사자를 일컫는 제주어다. 문영택 이사장은 질토래비를 제주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개척하는 ‘길라잡이’라는 의미로 확장해 다시 불러냈다.
질토래비에서 하는 일은 다양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제주일보에 ‘질토래비’라는 이름으로 제주의 역사문화에 관한 글을 연재하는 것이다.
매주 1회 지금까지 총 231회를 연재했으며, 앞으로도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제주의 역사문화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고 있다. 이 외에도 회원 50명이 한 달에 한 번씩 제주를 탐사하며 새로운 역사 정보를 찾고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한다. 돌하르방의 제자리 찾기 운동, 천년 도읍지 제주시 원도심의 동성·돌하르방 길과 탐라·고을·병담 길 등 역사문화가 깃든 공간을 소개하고, 관련 안내서를 발간하는 것도 주요 활동이다. “질토래비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라져가는 제주의 역사 중 되살리고 싶은 것을 찾아 공유하고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제주의 수눌음 공동체 문화예요. 함께 품을 교환한다는 의미입니다. 농업생산 공동체에서 행해지던 관습인데, 우리는 이 수눌음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고 싶습니다.”
문영택 이사장은 제주 사람들이 수눌음을 통해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생존해 왔다고 말한다. “제주일보에 무료로 글을 연재하는 것도 그들은 지면을 내주고 저는 글로 채워준다는 나눔과 봉사, 즉 수눌음의 의미라고 볼 수 있지요.”
문영택 이사장이 나눔과 봉사에 뜻을 펼칠 수 있는 데는 공제회의 분할급여금도 적잖이 도움이 되었다. 은퇴 후에도 분할급여금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어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공제회의 분할급여금은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제2의 인생을 더욱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제주 역사문화를 탐구하고 알리는 데 집중할 수 있었고, 질토래비를 설립해 봉사 활동과 교육에도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생생지락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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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토래비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라져가는 제주의 역사 중 되살리고 싶은 것을 찾아 공유하고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수눌음 공동체 문화예요. 함께 품을 교환한다는 의미인 수눌음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고 싶습니다.”

제주 역사가 곧 우리 역사

문영택 이사장에게 제주는 특별하다. 그는 “제주는 아픔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역사 의식을 깨우쳐줄 수 있는 역사의 보고”라고 강조한다.
제주의 속살은 보지 못한 채 겉모습만 이야기하는 이 시대에, 제주의 감춰진 면모를 드러내 공유하려는 그의 노력이 더욱 빛난다.
“제주에는 널리 알려야 할 역사가 많습니다. 1910년 일제가 단행한 읍성 철폐가 대표적인 예지요. 제주 읍성은 외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제주읍 일대를 둘러싸고 쌓은 성곽으로, 일제가 허물어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존재했다면 유럽의 해안가 성처럼 유산으로서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또 사람들은 제주에 대해 4·3사건만 이야기하지만, 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1901년에 일어난 ‘이재수의 난’, 1168년에 일어난 ‘양수의 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문영택 이사장은 탐라국이 탐라군, 탐라현으로 위상이 축소되면서 중앙정부 현령들이 제주인을 착취한 역사를 전한다. 그에 따른 제주인들의 반발과 봉기가 섬사람들의 ‘센 기질’을 형성했다는 점, 정조의 부름으로 궁궐에까지 들어갔던 의녀반수(오늘날 수간호사) 김만덕과 제주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던 광해군의 이야기도 전하며, 역사는 균형 있는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에게 꼭 알리고 싶은 제주의 한 가지를 청했다. 문영택 이사장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사라봉과 별도봉을 꼽았다. 제주의 삼다(三多)에 ‘돌, 바람, 여자’가 아니라 ‘돌, 바람, 오름’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오름이야말로 제주인의 삶을 지탱한 곳이라며, 수십 개의 갱도진지가 있는 사라봉을 꼭 봐야 한다고 소개한다.
“제 목표요?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는 것입니다. 제주는 해상 왕국이었고, 독립 국가로서 높은 가치를 지녔던 곳이에요. 제주의 정체성을 찾고, 제주가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제주의 역사는 곧 우리의 역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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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리안치: 죄인을 귀양 보내 울타리를 친 집에 가두는 형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