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 사진 제공 판씨네마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 사진 제공 판씨네마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따분한 일상마저 의미를 갖게 되잖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갑자기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변하거든.”
헤드폰을 끼고 ‘그레타’(키라 나이틀리)와 음악을 듣던
‘댄’(마크 러펄로)이 거리의 사람들을 보며 나지막이 말한다.
싱어송라이터 그레타, 음악 프로듀서 댄. 두 사람의 상황은 좋지 않다.
오랜 연인이자 음악적 파트너였던 데이브와 함께 뉴욕에 왔던 그레타는 이제 혼자다.
데이브는 스타가 되는 순간
다른 여성에게 눈을 돌렸다. 화가 난 그레타는 데이브의 집에서 짐을 모두 빼 나왔지만, 돈이 없어 뉴욕을 떠나야 한다.
음반 실패를 거듭하던 댄은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잘렸다.
게다가 바람난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면서 벌써 집을 나온 지 2년째다. 딸과도 사이가 좋지 못하다.
두 사람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골목에 있는 클럽에 들른다.
그레타는 친구 스티브(제임스 고든)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무대에 오르고, 그레타의 노래를 우연히 들은 댄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댄은 그레타에게 음반 제작을 제안한다. 음악은 두 사람을 수렁에서 건질 수 있을까?
‘비긴 어게인’은 음악으로 치유받는 사람들의 얘기다.
그레타에게 음악은 진정성과 창의성을 나누는 도구다. 댄은 음악적 재능은 있지만 아직 원석인 그레타를 세상 밖에 알리기
위해 음반 회사에 들려줄 데모 음반부터 만들기로 한다.
하지만 돈이 없어 데모 음반을 만들 연주자와 스튜디오를 구할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하던 댄은 색다른 제안을 한다. “곡마다 장소를 바꾸는 거야. 뉴욕시 전체를 돌아다니며 여름내
녹음해서 미친 듯이 아름답고 엉망진창인 이 도시에 헌정하는 거야.”
로어이스트사이드다리 밑,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꼭대기, 센트럴파크 호수의 보트 위, 차이나타운, 세인트존성당, 지하철, 할렘가···. 이제 뉴욕의 모든 곳이 스튜디오가 된다.
그레타는 기타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댄은 가난한 도시의 연주자들을 섭외한다.
골목에서 뛰어놀던 개구쟁이들은 코러스를 하고, 댄의 사춘기 딸은 전자기타로 연주에 참여한다.
이제 그레타의 음반은 모두에게 단순한 음반이 아니다. 그렇게 음악은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다시 시작하는(Begin Again) 도구가 된다.
음악은 힘이 세다.
사이토 히로시는 저서 『음악심리학』을 통해 “음악에는 우리가 행동하는 에너지의 수준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자기치료(self-therapy)의 일환으로 일상생활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더 많이 접한다면 우리 인생이 더욱
행복해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음악은 암이나 심장병 등 만성질환을 치료할 때 심리적 안정을 돕는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음악치료학회(American Music Therapy Association)는 음악 치료를
‘정신과 신체 건강을 복원, 유지, 향상하기 위해 치료적 목적으로 음악을 사용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1950년 창립된 미국음악치료학회는 병원, 교육 및 사회 기관 등에서 음악치료에 대한 학문적, 임상적 연구 모임을 시작했다.
이후 음악치료는 인간의 음악적 행동에 내재된 심리적 이론과
치료적 원리에 근거해 발전했다.
한국음악치료학회지의 암환자 대상 연구 결과를 보면, 대상자의 불안, 우울, 분노, 활력에 음악치료가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다양한 음악치료 프로그램의 구성 및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연구 보고서는 제언한다.*
*출처: 「음악치료가 암환자 기분상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2008)
댄은 말한다. “즐겨듣는 재생목록(playlist)만 봐도 그 사람을 많이 알 수 있어.” 음악은 사람의 성격과 감정을 잘 반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어느새 행복한 미소가
얼굴에 퍼지지만, 좋아하지 않는 음악을 들으면 미간이 찌푸려진다.
음반 기획사는 그레타에게 수익을 기획사 90%, 창작자 10%로 나누자고 제안한다. 홍보비, 유통비 등을 감안할 때 그게
업계 관행이라고 한다. 자신이 작곡하고 연주하고 심지어 음반까지 제작했는데 10%라니, 그레타는 거대 기획사가 주도하는 음악산업 시스템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음악산업의 과도한 상업주의에 저항하고 독립적인 예술가로서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그레타는 결단을 내린다. 댄은
그레타를 존중하며 그의 손을 들어준다. 이들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크레딧이 올라가는 영화의 가장 마지막에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