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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마음으로 전하는
‘인생 사진’ 선물


부산보건대학교 사회복지과 박희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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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찍습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박희진 교수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그의 따뜻한 격려 덕분일까. 처음엔 어색해하던 어르신들의 얼굴에 하나둘 미소가 번진다. 그렇게 미소 짓는 얼굴 하나하나에 깃든 인생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낸다. 30년 가까이 장수사진 봉사를 이어온 박희진 교수에게서 ‘나눔’이 주는 보람에 대해 들어보았다.

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김수

‘사진’으로 ‘나눔’을 실천하다

겨울비가 촉촉이 내리는 어느 오후, 부산 동구에 있는 한 노인복지관 대강당으로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하나둘씩 이어진다. 강당 한쪽에서는 박희진 교수가 조명 세팅에 분주하다. 지역 어르신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장수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어느덧 30년 가까이 이어온 봉사활동 덕분일까. 강당에 비치된 탁구대를 배경으로 촬영부터 액자 전달까지 모든 과정이 그의 손길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좋아하는 옷을 차려입고 온 어르신부터 젊은 시절 입었던 옷을 다시 꺼내 든 분까지, 촬영에 대한 어르신들의 기대감이 강당을 가득 메운다. 요즘은 누구나 휴대전화로 손쉽게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시대지만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남기는 사진인 만큼 촬영에 임하는 박희진 교수의 마음가짐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첫 장수사진 촬영 봉사를 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1996년 3월 26일, 날짜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부산보건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되고 첫 월급을 받은 바로 다음 날이었거든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85학번으로 캠퍼스에 첫발을 내디딘 후, 이듬해부터 서울의 장애인복지관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사회복지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진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지요. 이후 학사과정을 마치고 사회복지를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노인복지 전공으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습니다.”
사진과 사회복지를 모두 전공한 박희진 교수에게 ‘사진 봉사’는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특별한 방식이다. 그가 장수사진 촬영 봉사를 시작하게 된 데는 개인적인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1991년 대학원에 다니던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영정 사진으로 쓸 만한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겁니다. 결국 할머니의 주민등록증 사진을 촬영해 할머니 얼굴 부분만 잘라 영정 사진을 만들었는데 그 일이 내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손자가 사진을 전공했는데도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을 남겨드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장례를 마치며 ‘나중에 직장을 얻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어르신들 영정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5년 뒤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자마자 장수사진 봉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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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상 모두에게 유익한 ‘나눔’

박희진 교수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장수사진 봉사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29년이 흘렀다. ‘프로 사진가’의 솜씨로 찍은 사진에 정성껏 액자까지 만들어 선물하니 어르신들의 만족감은 클 수밖에 없다. 처음엔 무료로 영정 사진을 찍어준다는 말에 의아해하던 분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진심을 알아봐 주는 이들이 늘었다.
10년 주기가 다가올 때마다 ‘이번까지만 하고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봉사 현장에서 느끼는 특별한 보람이 해마다 그를 다시 이 일로 이끌었다.
“강의가 없는 날이나 주말, 방학 때 시간을 내 한꺼번에 촬영합니다. 코로나19로 한동안 봉사활동을 멈췄지만, 팬데믹이 끝난 2023년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나눔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이어질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봉사활동은 봉사자에게도 많은 이로움을 줍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봉사를 통해 자존감이 올라가고 삶의 의미를 다시 느낄 수 있죠. 만약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만 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저보다 더 오랜 시간 봉사를 이어온 분들이 많은 이유도 결국 모두가 나눔의 가치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에는 슬픔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건강히 살아 계실 때 미리 남기는 영정 사진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박희진 교수는 사진 봉사를 이어오며 그 소중한 의미를 되새긴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전 세계가 혼돈에 빠지며 우리 일상도 모두 멈췄잖아요. 팬데믹이 끝나고 일상을 되찾은 뒤 몇 차례 문상 갈 일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장례식장에 들어서다 우연히 다른 호실에 걸린 영정 사진을 보았는데 제가 찍어드린 사진이더군요. 슬픔의 자리였지만, 작지만 깊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죠. 지난해에도 한 복지관에서 150여 분을 촬영했는데 며칠 후 담당 복지사에게 급히 연락이 와서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서둘러 작업해 장례식에 쓸 수 있도록 사진을 보내드린 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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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인사이드03 “나눔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히 이어질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봉사활동은 봉사자에게도 많은 이로움을 줍니다. 봉사를 통해 자존감이 올라가고 삶의 의미를 다시 느낄 수 있죠. 저보다 더 오랜 시간 봉사를 이어온 분들이 많은 것도 결국 모두가 나눔의 가치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순간을 다채롭게 채우는 나눔을 희망하며

어르신들이 가시는 길에 남기는 마지막 인사와도 같은 사진. 그래서 박희진 교수는 장수사진을 촬영할 때마다 가능한 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려 한다. 억지로 웃음을 짓게 하기보다 그 사람의 개성과 삶의 궤적이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노력한다. 진지한 어르신은 근엄한 모습으로, 유쾌한 어르신은 환한 웃음으로 담아낸다. 짧은 만남이지만 그 찰나에도 어르신들의 인생 여정이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전쟁과 가난 등 우리나라의 질곡을 함께 견뎌온 어르신들이기에 밝게 웃는 사진은 열 장 중 한두 장에 그칠 때도 많다.
가진 것도 남길 것도 없는 어르신들이 “사진 한 장 예쁘게 남기고 싶어 왔다”고 말할 때면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박희진 교수는 자신의 일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으려 한다. 인간의 생애주기처럼 노년기에 준비할 일 중 하나가 영정 사진을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나눔은 사진 봉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박희진 교수는 지역사회의 문화 발전과 예술 교육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함께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부산보건대학교 사회복지과를 중심으로 대학 구성원들이 협력해,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을 초청하여 지역사회 어르신들을 위한 국악 공연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박희진 교수는 “선진국에 접어든 우리나라도 노인들의 여가와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일이 복지 차원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사회복지를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제자들이 자랑할 만한 스승이 되기 위해 스스로 모범을 보이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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