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경희 | 사진 성민하
글 이경희 | 사진 성민하
울산시민학교의 건물은 오래되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매우 특별하다. 내부는 소박하지만 깔끔하며
무엇보다 이곳을 오가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밝고 환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울산시민학교를 이끄는 김동영 교장은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자신의 삶뿐 아니라 타인의 삶도 변화시킨
인물이다.
김 교장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울산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부산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그는 낮에는 연탄 배달을 하고 밤에는 부산문성재건학교에서 공부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중등 과정을 마친 그는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중 다시 야학과 인연을 맺었다. 이번에는 학생이 아닌
교사로서였다.
“낮에는 복무하고 밤에는 부산대 1, 2학년 학생들과 함께 중학교 과정을 가르쳤습니다. 어린 나이에
교장직까지 맡게 되면서 제 삶은 온전히 야학과 함께하게 됐습니다.”
야학에서 만난 동료 교사와 결혼한 그는 울산으로 이주해 선명여상에서 다시 야학을 시작했다. 이후
서린학교를 열었지만 녹록지 않은 월세 문제로 여러 차례 장소를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러다 1993년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고, 2003년 울산시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울산시민학교는 단순한 교육의 장을 넘어 배움으로 인생을 변화시키는 공간이다. 현재 이곳에서는 학력 인정
초등학교(한글반 3년 과정), 학력 인정 중학교(1년 과정/3년 과정) 그리고 고졸 검정고시반을 운영하며 33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학생들의 나이, 성별, 국적은 다양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하나같이 뜨겁다.
김동영 교장은 이곳에서 마흔여덟 번의 졸업식과 수많은 검정고시 합격생을 배출했다. 매번 졸업식은 눈물과
감동의 순간으로 가득했다. 그 긴 세월 동안 김 교장이 잊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2003년, 야간반이 없던 시절이었어요. 한 30대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단 이틀이라도 한글을 배울 수 있게
해달라며 찾아오셨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분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일하면서도 한글을 배우려는 열정이 대단했어요. 매일 일기를 써서 저에게 첨삭을 받으며 열심히
노력하셨죠.”
그 학생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검정고시에 차례로 합격하며 학업의 꿈을 이뤘고, 지금은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매달 2만 원씩 울산시민학교에 기부하며 다른 학생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배움이 부족해 힘든 시간을 보낸 분들이 배움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는 모습을 볼 때 정말 큰 보람을 느낍니다.”
김 교장은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자부심이자 보람이라고 말했다.
울산시민학교의 김동영 교장은 문해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전했다. 문해교육은 단순한 학습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현대 사회에서는 특히나 ‘생존’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문해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삶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문해력이 없어도 비교적
수월하게 살 수 있었지요. 그러나 현대는 다릅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숫자를 읽고, 상표를 보고, 안내문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영어까지 등장하는 시대입니다. 단순히 한글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새로운 세상이 열린 거죠. 그래서 문해력은 단순히 학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김 교장은 문해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실천해 온 산증인이다. 그의 노력은 울산시민학교에
국한되지 않았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전국야학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야학의 법인화와 문해교육의
제도화를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문해교육 교과서 제작에도 참여하며 교육의 질을 높였고, 평생교육을
통해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했다.
“문해력은 단순히 문자를 읽는 것을 넘어 그 뜻을 이해하는 것까지를 의미합니다. 흔히 대한민국의 문맹률이
0.2%라고 하지만, 이는 단순히 글자를 읽을 수 있는지만을 따진 결과일 뿐입니다.”
김 교장은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문장을 이해하는 실질적인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근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농담처럼 번지는 MZ세대의 문해력 저하 문제는 실제로 심각합니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이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적 효율성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그는 울산의 문해 실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현실을 전했다.
“울산만 하더라도 중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 5만 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설문조사에서 ‘졸업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희는 ‘2025년 울산광역시 비문해 제로 사업’에 적극 협력하고 있습니다.”
울산시민학교를 통해 문해교육의 지속 가능성을 확립하고자하는 그의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김 교장은 자신의
후임이 교장직을 이어받더라도 학교의 문해교육과 평생교육이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울산시민학교를 떠나며 김동영 교장에게 제도 밖의 평생교육에 헌신해 온 이유를 물었다. 짧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그의 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운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