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황연희
‘디토앤디토’ 취재기자 및 총괄이사이며,
신구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겸임교수다.
올해 최고 트렌드를 꼽자면 단연 ‘러닝’을 빼놓을 수 없다. 아침에 공원이나 강변을 달리는 조깅 문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활의 일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달리기’가 운동을 넘어 트렌드이자
하나의 문화가 되었을까. 많은 사람이 2030세대가 주도한 ‘러닝크루’ 문화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러닝크루는 러닝(running)과 크루(crew)의 합성어로, 함께 달리며 건강을 유지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런런런, 와우산30, 서울러너스, 잠실러닝클럽, 88서울, 러닝메이트,
트래블러닝크루(TRC) 등 수십 개의 러닝크루가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시는 올해 체육 활성화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7979 서울러닝크루를 운영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몸과 마음의 건강을 중시하는 웰니스 라이프(wellness life)가 확산되면서 러닝크루에
가입하는 20~30대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달리기는 주로 혼자 하는 운동이지만 사람들은
왜 함께 달리기 위해 모일까?
이들은 달리기는 저렴한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고 경쟁보다는 자기만족에 집중할 수 있어 ‘힐링’이
된다고 말한다. 동시에 함께 달리며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 혼자이면서도 같이 즐길 수 있는
‘힐링 런’이라고 강조한다.
잠실러닝클럽에서 활동하는 김민지 씨는 “처음에는 혼자 달리다 ‘런태기(러닝 권태기)’가 찾아와
러닝크루에 참여하게 됐어요. 마라톤이나 트레일 러닝* 같은 도전도 크루와 함께라서 가능했고,
그 과정에서 성취감도 커졌죠. 또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이 좋아지는 것도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나이, 직업, 성별, 속도에 상관없이 달리는 것이 좋아 모인 점도 러닝크루를 선택하는 이유다.
러닝크루가 늘면서 크루의 콘셉트도 다양해지고 있다. 일요일에만 달리는 썬데이서울, 서울의 야경을
즐기며 야간 러닝을 하는 서울나이트러너스, 서울과 수도권 곳곳을 여행하듯 달리는 TRC 등이 그 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7979 서울러닝크루는 러닝 후 1인당 7,979원이 적립되어 운동 약자를 돕는 기부
콘셉트로 주목받고 있다.
*트레일 러닝: 산길(trail)과 달린다(running)의 합성어
러닝크루의 증가는 스포츠 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패션에 민감한 20~30대가 러닝크루 활동을
주도하면서 러닝화뿐만 아니라 러닝 패션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러닝화 수요 증가로 러닝화 전문 브랜드인 호카와 온러닝이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성장세를 뛰어넘는
이변을 일으켰고,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트레일 러닝 콘셉트의 신제품 라인을 확장하고 있다. 또 레이스먼트,
러너스클럽, 굿러너, 온유어마크 등 러닝화와 러닝 패션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매장이 늘고 있다.
러닝 패션 브랜드들도 주목받고 있다. 프리미엄 러닝화 브랜드 노다, 러닝과 의류를 결합한 새티스파이, 러닝
전용 선글라스 브랜드인 디스트릭트 비전, 러닝 양말 브랜드 CEP 등 특화된 브랜드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들은 러닝 인구 증가에 발맞춰 러닝 클래스를 운영하거나 자체 러닝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코오롱스포츠는 최근 ‘2024 울주 트레일 나인피크’를 공식 후원했고, 호카는 ‘2024 트랜스제주 by UTMB’를,
다이나핏은 누적 거리 경쟁 대회 ‘READY for NEXT SEASON’을 개최했다.
호카 김만희 마케팅 이사는 “20~30대 러너가 늘어나는 이유는 팀이 아닌 개인에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크루 활동도 유연한 커뮤니티를 목적으로 하기에 강제성이 없다. 러닝 트렌드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더욱 맹렬하게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전했다.
러닝크루가 늘면서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대개 20~30명 이상이 단체로 뛰며 홍보 촬영을 하는 경우가 많아
주변에 불편을 끼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한강, 반포종합운동장, 서울숲, 석촌호수 등 러닝크루들이 즐겨
찾는 러닝 장소에서는 이런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야간 소음과 공공장소 점유 문제로 민원이 제기되면서 일부
지자체에서는 ‘러닝크루 진입 금지’와 같은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반포종합운동장은 5인 이상, 석촌호수는 3인
이상의 단체 달리기를 제한한다는 현수막을 설치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30일, 서울시의회에서는 ‘러닝크루를 통해 바라본 청년문화’를 주제로 청년정책포럼이 열렸다.
전문가들은 “러닝크루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규제보다는 자정 노력과 에티켓이 정착되도록
돕는 것이 청년 문화를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는 30분 이상 달릴 때 느껴지는 도취감, 달리기의 쾌감을 뜻하는 말이다. 러너스
하이가 오직 러닝크루만의 경험이 아니라 그들의 에티켓 덕분에 주변 사람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모두의
기쁨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