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광주향교입니다. 향교가 어떤 곳인지 알고 계십니까? 향교는 중국과 한국 유교 성현에 대한 향사(享祀) 기능과 지방의 교육을 담당합니다. 또 지역 사회를 교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자리한 광주향교. 문화해설사 박종윤 회원이 양복 위에 붉은 한복을 걸쳐 입고 관광객을 맞이한다. 더운 날씨 때문에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데, 설명하는 내내 지친 기색이 없다. 오히려 말할수록 에너지가 차오르는 듯하다.
박종윤 회원의 전직은 역사 교사다. 1988년부터 2018년 2월까지 박종윤 회원은 전라·광주 지역에서 30년간 교직 생활을 했다. 그리고 퇴임 후 광주를 찾는 사람들의 역사 선생님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문화해설사란 지역의 역사·문화 등을 공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광객에게 문화관광지에 대해 설명해 이해를 돕는 사람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으로 각 지자체에서 문화해설사 선발 공고를 내면, 그 시기에 맞춰 신청 후 자격 취득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저도 시험을 치르고 광주시 문화해설사로 선발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래 작년부터 현장에 투입되었어야 했는데 코로나19 여파로 미뤄져 올해 3월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광주시 문화 관광 해설사로서 박종윤 회원은 주 2회 광주 시내 문화재에 상주하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광주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한다. 공무원으로 일하다 2016년 퇴임한 아내 김영희 씨도 광주 지역에서 5·18민주화운동 해설사와 도심 트레일 해설사(도심 역사·인물, 문화예술, 관광 명소 등을 활용해 특색 있는 테마별 도보 관광 코스와 스토리텔링을 개발·운영하는 관광 프로그램에서 해설사로 활동하는 사람) 등으로 일하고 있다.
“역사 교사로 일하면서 지역사(地域史)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러다 공무원 재직 시절부터 광주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두었던 아내가 문화해설사 일을 적극 추천하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부부가 함께 문화해설사로 일하고 있고요.”
“전직이 역사 교사면 문화해설사가 되기에 유리한가요?”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 역사 교사보다는 ‘교사’이기에 유리한 부분이 있다. 정보를 완벽히 이해하고, 쉽게 전달하는 훈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다만 문화해설사란 교육자가 아닌 스토리텔러다. 산재한 정보와 지식,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전설과 설화 등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좋은 문화해설사가 되기 위해선 박종윤 회원은 ‘꾸준함’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해설을 나가기 전에는 아는 것도 또 공부합니다. 해설사의 자신감은 지식에서 나오거든요. 해설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를 하지만, 해설사가 된 후에도 정기적으로 연수를 받고, 시험도 치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딜 가든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좋을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되고요. 문화해설사라는 이름을 얻은 이상 평생 꾸준히 공부해야 합니다.”
관광객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지가 중요한 이유는 현장에서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에 박힌 것은 쉽게 잊히지만, 가슴에 박힌 것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지역에 대한 이미지를 바꾼다. 그걸 알기에 김영희 씨는 5·18민주화운동 해설사로 현장에 나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현대사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역사를 전한다는 게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일을 계속하다 보니, 오히려 더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공감하도록 만들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교육을 받으면 응당 해설을 해야 하는데, 입 밖으로 5·18민주화운동을 꺼내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래도 마음을 굳게 먹고 현장에 나가던 어느 날 중학생 아이들을 만났어요. 해설을 마쳤는데 학생 한 명이 와서 ‘선생님 해설을 듣고 너무 감동했어요. 제가 커서 기자가 되어 꼭 취재하러 올게요’ 하는 거예요. 그 말이 큰 힘이 되었어요. 그 후론 용기를 낸 것은 물론 ‘나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문화해설사란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에게도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선생님입니다.”
광주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울고 웃으면서, 부부는 큰 위안과 힘을 얻는다. 집안에서의 안락을 추구했다면 얻지 못했을 귀한 힘이다.
최근 부부는 그들이 사는 동명동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명 ‘동명동애(愛) 마을해설사로(路) 동명알음단’이다. 주민주도형 마을여행 협동조합인 ‘동명문화 트래블(Travel)’도 세웠다. 이들은 마을해설사로서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이루어진 동명동의 방문객들에게 앞으로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할 예정이다.
“어린 시절 동명동 관사에 살았어요. 과거 동명동에 광주교도소가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거기 교도관으로 근무하셨거든요. 이사를 한 후에도 마음속에는 항상 동명동이 있었어요. 늘 여기서 다시 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퇴직 전 이곳에 집을 짓고 드디어 소원을 이루게 되었어요. 동명알음단이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도 동명동에 대한 사랑이 컸기 때문이에요. 누구보다 이곳을 지키고 싶었고요.”
김영희 씨와 같은 사람들의 바람 덕분에 아파트 재개발 예정지였던 이곳에는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주민을 주축으로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내년이면 도시재생사업이 완성되고, 본래 동명동이 가지고 있던 역사문화자원을 연결한 관광코스가 개발된다. 방문객들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공방, 박물관들도 들어선다.
“주변 관광지와도 연결해 광주의 새로운 관광구역으로 부상할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한다”라며 박종윤 회원이 눈을 반짝인다.
광주를 공부할수록 부부는 광주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광주를 지키고, 더 알리고 싶다는 바람도 더욱 커졌다. 박종윤 회원 부부는 앞으로 광주의 매력을 알 수 있는 곳을 다양하게 개발해 선보일 계획이다. 옛 흔적이 사라지거나 숨겨진 문화유산을 복원해내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무엇이든 알수록 달라 보이는 법이에요. 그래서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평소 공부와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죠. 도시는 특히 그러합니다. 다닐수록 알게 되고, 알면 또 다니게 되거든요. 자신이 사는 곳을 달리 보고 싶다면, 지역의 역사나 풍물 등을 한번 알아보세요. 사는 재미도 더 커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