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에 함몰된 교육, 변화가 필요해
정제영 교수는 한국 교육정책의 이론과 실제를 두루 경험한 교육 전문가다. 제44회 행정고시 합격 후 교육부에서 사무관과 서기관으로 10여 년 동안 근무했고, 2012년 이화여대 교육학과에 교수로 부임해 후학을 양성하면서 교육학 연구에 매진했다.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서 한동안 그가 집중했던 연구 분야는 학교폭력 문제였다.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 부소장을 맡으면서 다양한 위기학생 사례를 살폈습니다. 공교육의 교육 목표는 크게 ‘학습을 통한 성장’과 ‘학생들의 행복한 생활’로 구분되는데, 대다수 학생이 학교 교육을 자기 삶과 연결 짓지 못해요. 자신의 적성과 수준에 맞지 않는 수업을 들으며 소외감을 반복해 느끼다가 일탈하는 경향도 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에게 학교가 행복한 경험을 하는 곳으로 인식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학교가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2020년에 미래교육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이화여대 미래교육연구소는 미래 교육 정책의 기획과 집행, 평가 과정에 대해 연구를 하는 곳이다. 최근에는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을 활용한 학생 맞춤형 교육 시스템 개발과 위기 학생 조기 발굴·개입을 위한 시스템 개발도 병행 중이다. 정제영 교수는 오늘날 학교 교육의 위기는 산업사회 때 유효했던 교육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는 데 있다고 본다. 대량생산 체제로 운영되었던 산업사회에서는 표준화된 인력을 양성해 산업 현장에 빠르게 투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효율 중심적 사고는 교육에도 적용되었다. 학교 역시 학생 개개인의
학습 속도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1년 단위로 진급과 진학을 반복하는 ‘규격화된 제도’로 기능했다.
“산업사회에서 학교는 다량의 지식과 정보를 암기하고 빠른 계산 능력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습의 내용과 진도, 방법은 ‘평균적인 학생’을 가정하고 구성되었죠. 그러나 ‘평균’에 완벽히 부합하는 학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대두되면서 산업사회에 통용되었던 법칙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도 커졌다. 기존 교육을 혁신하려는 시도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재정과 인력의 한계로 이렇다 할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래 교육의 대안: AI 교육 혁신
코로나19 팬데믹은 미래 교육의 쟁점을 촉발한 계기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온라인 교육이 전면 시행되면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가 디지털 교육의 명과 암을 직접
경험했다. 일부 자기 주도 학습을 수행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많은 학생이 보호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학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교사의 역할과 학교 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기도 했다.
“온라인 수업 초기에는 디지털 플랫폼 접속이나 기기 부족 같은 문제가 상당히 제기되었습니다. 온라인 학습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디지털 기반 학습 체제에 접근하기 어려운 학생들은 학습 격차 문제도 겪었습니다. 이제는 전면 등교를 하고 있지만, 당시 경험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의 정착이 앞당겨졌습니다.”
정제영 교수는 디지털 온라인 교육이 가속화되면서 새롭게 대두되는 문제에도 주목하고 있다. 2022년 11월 30일, 미국의 AI 개발사 오픈AI가 공개한 챗GPT에 대한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전에도 AI 스피커나 학습용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보조 도구가 있었지만 챗GPT만큼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실제로 챗GPT는 출시 닷새 만에 100만 명, 2주 만에 200만 명의 사용자를 모으면서 이른바 돌풍을 일으켰다. 질문에 빠르게 답하는 것은 물론 인간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은 작문 실력으로 인해 챗GPT를 학습에 이용하는 사용자도 많았다. 일각에서는 챗GPT가 교수자의 위상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정제영 교수는 AI를 비롯한 최첨단 에듀테크가 오히려 미래 교육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챗GPT를 가장 잘 활용해야 하는 사람은 교사들입니다. 수업 설계의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물론 기존 교육 내용을 개선하는 데에도 챗GPT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수업 후 피드백에도 접목할 수 있고요.”
다만 그는 학생들이 생성형 AI에 과도하게 의존해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경계했다. 대신 “개념에 대한 설명이나 지식을 이해하는 보조 도구로 활용하면 학생 개개인의 맞춤형 튜터가 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이화여대에서도 몇몇 교수가 먼저 나서 챗GPT를 활용한 과제를 내기도 했다. 지난 1학기를 연구 학기로 보낸 정제영 교수도 “2학기에는 챗GPT를 접목한 과제를 고민하고 있다”라고 전한다.
이미 이화여대 미래교육연구소는 교육부와 함께 ‘챗GPT 교육적 활용 가이드라인’ 작성에 나섰다. 지난 3월에는 「챗GPT 교육혁명」이라는 책을 내고 AI와 함께 살아갈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 교육의 밑그림을 제시하며 챗GPT 활용 방안까지 제공했다.
오지선다에서 벗어나 지식과 경험 교육의 조화
정제영 교수는 “미국과 영국 등 이미 에듀테크를 공교육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국가들이 있다”라고 전한다.
한국 역시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준비 중이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개인별 맞춤형 교육의 실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AI 시대의 미래 교육은 다양한 에듀테크를 활용해 지식을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의 교육으로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러닝(hybrid learning)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지식 교육에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창의 교육은 교사가 주도하여 학생들과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는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보편화될수록 ‘개념적 지식 기반의 판단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특정 분야나 주제에 대한 개념, 원리, 규칙, 관계 등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판단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챗GPT는 대량의 데이터를 학습해 다양한 주제로 대화할 수 있지만 항상 신뢰성 높은 답변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사용자들도 스스로 챗GPT의 답변을 평가하고 검증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춰야 하겠죠.”
이러한 맥락에서 기존 교육에서 강조해 온 지식 교육 역시 계속 이어져야 한다. 학교에서 접한 다양한 지식은 ‘개념적 지식 기반의 판단력’을 완성하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교과별 지식을 단순암기하는 방식으로 학습해 왔습니다. 하지만 습득한 지식을 적용, 종합, 분석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목표를 둔다면 그보다 고차원적 교육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제영 교수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식을 이해하는 노잉(knowing)뿐 아니라 두잉(doing) 중심의 학습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프로젝트 수업이나 토론 같은 창의적 활동은 지식과 활용을 결합한 대표적인 교육적 시도다. 덧붙여 “수능으로 지식 암기와 정확한 계산 속도로 학생의 서열을 매기는 오지선다형 평가 방식도 이제는 종언을 고할 때”라고 말한다.
기술 발전과 함께 세상도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시대를 초월해 변함없이 지켜야 할 교육의 기준은 있다. 개인이 전체를 이루는 일부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존중받으며 성장하는 교육. 결국 기술은 미래 교육의 보조 도구일 뿐 본질은 아니다. 정제영 교수 역시 그 본질을 기억하며 미래 교육의 청사진을 그려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