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無爲)에서 무한(無限)의 세계로
이른 아침 창원시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으로 어르신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돋보기를 코끝까지 내려쓰고, 스마트폰 전용 펜을 굳게 쥔 채 수업 준비를 한다. 매주 화요일 이곳에 모이는 어르신들의 공통점은 ‘블로거’라는 것. 한 어르신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일산에 있는 동생 집에 갔다가 근처 호수공원에 가보았습니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작성된 글이 있다. 검지 하나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적어 넣은 글이다. 공원에서 만난 꽃, 정지용 시인의 시비(詩碑) 등 직접 찍은 사진도 채워 넣었다. 일흔 넘어 블로거가 되면서 어르신은 일상을 보석함에 넣는 법을 배웠다.
어르신들에게 블로그 제작 수업을 진행하는 이는 퇴직교사 최정란 회원이다. 수업을 위해 최정란 회원은 수업 자료를 직접 만들고, 원활한 수업 진행을 위해 빔프로젝터 등 준비물도 챙겨왔다. 흔히 어르신이라고 하면 스마트폰, 키오스크 등 디지털기기 사용에 서툴 것으로 생각하지만, 최정란 회원은 자격을 인정받은 스마트폰 교육지도사다. 올해 3월부터는 마산 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수업과 심화 과정으로 블로그 제작 수업을 이어 진행하고 있다.
오늘 수업 주제는 ‘동영상 편집’. 최정란 회원은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며 차근차근 영상 편집 방법을 알려준다. 같은 내용을 들었더라도 이해하는 속도는 각기 다르다. 곧장 “다했다”라는 어르신도 있지만, “안 됩니꺼?” 묻자 “없어지삣다” 하고 대답하는 어르신도 있다.
최정란 회원이 어르신 사이에 들어가 직접 손으로 짚어가며 차근차근 방법을 알려준다. 쉬운 내용이라도 한 명 한 명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역시 잘하신다니까” 하는 칭찬도 잊지 않는다. 습득이 빠른 사람이 느린 사람에게 한 번 더 알려주는 등 서로 도우며 어르신들은 다시 같은 속도로 시간 위를 걷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하나의 영상이 완성되고, 블로그에 올리면서 오늘의 미션이 완료된다.
법적으로는 똑같이 만 65세 이상으로 ‘노인’에 속하지만, 강사와 학생으로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배움’이다. 최정란 회원은 먼저 배웠기 때문에 강사가 될 수 있고, 어르신들은 배우고자 찾아왔기에 학생이 될 수 있다.
“노인에게는 빈곤, 고독, 무위(無爲), 질병. 이 네 가지가 따라다녀 힘들다고 합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이 할 일이 없는 것이라고 하고요. 퇴직 후 저는 할 일을 찾기 위해 경상남도에서 운영하는 경남행복내일센터를 찾아갔고,
거기서 스마트폰 교육지도사 자격 과정을 공부했어요. 뜻을 세우니 길은 무한으로 열리더군요. 교육생 모임이 협동조합으로 발전하고, 교육 사업도 함께 진행하게 되었으니까요. 지금은 보수와 상관없이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해요. 어르신들도 수업받는 것을 무척 좋아하시고요. 서로가 무위에서 멀어진 셈이죠. 블로거가 되면 삶에서 이야기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평범했던 일상도 조금 더 특별하게 보게 되거든요. 어르신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저는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우간다에서 처음 시작된 봉사 여정
지금은 스마트폰 선생님이지만, 퇴직 전까지 최정란 회원은 손에 붓을 든 미술 교사였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1981년 6월 경남 고성의 회화중학교부터 2019년 2월 창원 명곡여자중학교까지, 38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처음 최정란 회원에게 교사의 꿈을 심어준 것은 초등학교 은사님이었다. 그 씨앗은 칭찬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자신의 그림을 학생들 앞에 들어 보이며 “참 잘 그렸다” 칭찬해 주신 은사님 덕분에 최정란 회원은 그림 그리는 선생님이 되기를 꿈꾸게 됐다. 그리고 선생님이 된 후에는 칭찬의 힘으로 아이들을 일으켰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칭찬하는 선생님이고 싶던 그는 봉사에서 그 방법을 찾았다.
최정란 회원의 첫 번째 칭찬 여정은 머나먼 땅, 아프리카에서 먼저 시작됐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으로 활동하기 위해 그는 1년여 동안 배드민턴과 영어를 배웠다.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퇴직 하루 전 KOICA로부터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우간다에서 미술 교사를 필요로 한다는 소식을 듣고 퇴직 3개월 만에 비행기에 올랐어요. 낯선 나라, 그중에서도 아프리카 우간다에 간다니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간다는 책임감, 우리 세금이 쓰이는 일인데 허투루해선 안 된다는 사명감이 용기로 바뀐 것 같아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이 돌아오자’ 다짐했죠.”
최정란 회원이 찾아간 곳은 우간다 은산지중등학교(Nsangi Secondary School).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보니 남아 있던 두려움도 눈 녹듯 사라졌다. 과거 우리나라가 처했던 교육 현실이 비쳐 보여 더욱 마음이 쓰였다.
“지금이야 무상교육이지만, 오래전 우리도 학교에 육성회비를 내야 했어요. 못 낸 학생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요. 기본적인 교육을 받는 것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던 시절이었죠. 우간다는 오래전 우리와 같은 모습이었어요. 아침이면 교사가 학생들에게 영수증 검사를 해요. 학비 영수증이 있는 학생은 교실로 들어가고, 없는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죠. 그 아이들 얼굴을 보는 게 참 힘들었어요.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최정란 회원은 물심양면으로 우간다 학생들을 도왔다. 본래 임무인 미술 교육을 열심히 하는 한편, 교육 환경을 개선할 방법을 계속 고민했다. 그 와중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 듣기도 했다. 그러나 슬픔을 추스르고 그는 아프리카에 다시 돌아와 학생들 앞에 섰다. 그리고 조의금 중 일부를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한국 학생과 우간다 학생을 연결해 줄 방법도 찾았다.
한국의 도계중학교, 명곡여자중학교와 은산지중등학교 간 MOU를 체결하고, ‘국제 학생 미술 작품 교류전’을 열어 3개 학교 학생의 작품이 전시될 수 있도록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우간다로 간 지 9개월 만에 급히 귀국해야 했지만, 이후에도 원격으로 계속 학생과 기관을 만났다. 코이카로부터 3만 달러의 현장 사업 자금을 지원받아 은산지중등학교에 지문인식기를 도입하고 교실 신축도 도왔다. 지금도 몸은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우간다에서 계속 학생들과 함께했다.
아는 것과 즐거움을 드리는 드리미초이 선생님
최정란 회원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할 일을 찾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스마트폰 교육지도사 공부였다. 2020년부터 스마트폰 교육지도사 양성 과정을 이수해 자격을 취득하고, 올해 초에는 뜻이 맞는 교육생들과 힘을 합쳐 ‘이모작지원센터협동조합’를 설립했다. 교육생들의 능력을 모으니 스마트폰, 블로그 활용, 금융 상담, 보이스피싱 예방, 자서전 쓰기 등 다양한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 수 있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지도사, 디지털 튜터 자격도 받았다.
사실 돌아보면, 교직에 있을 때도 최정란 회원은 배우는 일에 늘 앞장섰다. 오래전 학교에 막 컴퓨터가 들어올 당시 누구보다 먼저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을 땄고, 함안종합고등학교(현 함안고등학교) 최초 여성 부장 교사가 된 그였다. 그리고 지금은 ‘할머니 인플루언서’를 꿈꾼다. 2021년부터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교육 정보를 제공하고 일상도 공유한다.
전문 블로거에게도 쉽지 않다는 ‘1일 1포스팅’을 한 지 벌써 2년째다. 최정란 회원의 이름은 ‘드리미초이’. ‘꿈(dream)’과 ‘배워서 드린다’라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나눔으로 누군가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는 인생 2막의 목표가 담긴 이름이다. 창원시 블로그 기자단과 경남행복내일센터 청춘서포터즈단, 이모작지원센터협동조합 부이사장으로도 활동한다.
“인생 2막을 앞둔 분들에게 ‘배움을 멈추지 말라’라고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요. 배운다는 것은 곧 즐길 거리가 생긴다는 뜻이에요.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과도 공유하고 싶다면, 봉사가 될 테고요. 배우고 베풀며 봉사하며 사는 지금,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동글게 자른 단발머리, 소녀 같은 미소, 어떤 일이든 먼저 나서는 적극성, 배우고자 하는 열의. 외향으로도 내면으로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앞으로도 최정란 회원은 배우고 또 배우며, 매일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