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깍(Nukak)’ 김경준 대표
가방으로 재탄생한 폐현수막
최근 대로변을 지나다 보면 각종 문구를 담은 현수막이 즐비한 것을 보곤 한다.
이뿐 아니다. 공연장, 전시장을 둘러봐도 행사장을 꾸민 현수막은 발에 차일 만큼
흔하다. 선거철이 되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 환경부에서 조사한
‘20대 대선·8대 지방선거 현수막 발생량 및 처리 현황’에 따르면, 전국 현수막
발생량은 2,668t으로 재활용률은 24.7%에 그쳤다. 소각량은 1,574t으로 58%로
집계됐다.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사용하고자 수많은 현수막이 만들어졌다가 소각되고
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에게 현수막은 ‘일회용’, ‘한 번 사용되고
버려지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기후위기를 우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현수막을
어떻게 하면 재활용할 수 있을지 각종 활용법이 대두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가운데 해외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의 가방이 인기를 끌면서 MZ세대
사이에서 이런 재활용 제품이 멋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국에 매장이 세 개밖에 없어 더운 날씨에도 줄을 설 정도라니 가방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된다. 덕분에 국내 업사이클링 브랜드들도 덩달아 활기를
띠고 있다. 시장 규모 역시 가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14년 통계에서는 연 매출 20억
원이었으나 2020년에는 40억 원으로 두 배나 성장했을 만큼 업사이클링 브랜드 인기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보편화하고 있다.
국내 자원 재활용에도 적극적
그중 눈에 띄는 브랜드인 ‘누깍’은 2001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됐다.
누깍은 지구상 마지막 남은 유목 유족 ‘누칵 마쿠(Nukak Maku)’에서 영감을 얻은 것.
누깍의 슬로건은 ‘버려지는 것들을 위한 두 번째 기회’. 직관적이면서도
사업의 정체성이 확실히 드러난다.
이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2016년으로, 유명 업사이클링 브랜드의 헤비
유저였던 김경준 대표가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엿보고 시작했다.
최근에는 성수동으로 매장을 옮기며 더 많은 고객과 만날 준비도 마쳤다.
현재 판매 중인 제품은 60여 가지로, 주로 패션 잡화를 생산한다.
소재는 광고 현수막, 폐타이어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해외 업사이클링 브랜드들이 대부분 제품을 수입 유통하는 것에 비해
국내에서도 직접 생산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김 대표는 “국내에서 버려지는 제품을 지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며 “창업 초기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문체부 산하의
지역 박물관 등을 직접 방문하며 현수막을 기부받아 제품 생산을 준비했다”라고 설명했다.
초기에는 이런 한글 상품의 인기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영어나 그래픽이 두드러지는 디자인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업사이클링 패션을 향한 시선이 달라지면서 이제는 한글이 포함된
디자인을 고객들이 먼저 찾는다. 이런 관심은 매출에서도 드러난다. 매년 두 배씩 성장할 뿐 아니라
3040세대를 중심으로 소비되던 업사이클링 제품이 1020세대까지 확산하며 많은 고객이 누깍을 애용하고 있다.
ESG 열풍과 함께 찾아온 컬래버 활동
환경과 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고객만이 아니다.
기업들도 누깍을 통해 자사의 현수막과 재활용품을 활용하고자 적극적으로 연락을 해온다.
지난 2022년에는 한국교직원공제회와도 뜻깊은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공제회에서 사용한 현수막을 가방으로 재활용하는 컬래버레이션 행사를 연 것이다.
이때 수거한 현수막은 방수 처리를 거쳐 실생활에서도 편하게 쓸 수 있게 재탄생시켜 공제회
직원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 외에 컬래버한 업체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놀랍다.
나이키 서울, 국방부, 롯데백화점, 국립공원공단 등 공공기관,
사기업 가리지 않고 자원 재순환을 위한 각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 업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제품은 브랜드
고객과 누깍 고객 모두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쓸수록 줄어드는 탄소배출량
누깍을 경험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최근 이사한 성수동 매장을 방문하면 매월 새로운 제품의 워크숍
클래스를 체험할 수 있다. 이전에는 1년에 세 번, 지구의 날과 환경의 날, 자원순환의 날에 맞춰
실시하던 워크숍을 상시 운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만들 수 있는 제품은 휴대전화 미니 백, 휴지 케이스,
북 커버 등이다.
김 대표가 사업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점은 역시 환경 보호다.
2020년부터 실제 현수막 재활용을 통해 얼마나 탄소 배출을 절감했는지 조사한 결과
20년 2t, 21년 7t, 22년 22t의 탄소를 절약한 것으로 집계됐다.
“매년 3배 가까이 늘어나는 배출 감소량을 기록한 것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며
“최근에는 먼저 현수막 등을 기부하고 싶다는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어서
그만큼 우리가 알려졌구나 하는 경험도 했다”고 답했다.
김경준 대표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여타 업사이클링 브랜드와 누깍의 차별점은
활동의 방점을 환경에만 두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비자가 가방을 선택할 때 환경 조건을 제거하고도 나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환경 제품이니까 가격이 비싸거나 디자인 퀄리티가 떨어져도 구매해야 한다는
식으로 운영하면 오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래서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길 바라기보다 고객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지 중 하나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디자인 측면을 강화하는 데도 많은 공을 들였다. 이들의 제품이 다시
쓰레기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누깍에서 재단사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가방의 형태보다 현수막의 어떤 부분을 예쁘게 재단할지가 가방의 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 ‘원앤온리’라는 업사이클링 제품 특유의 개성도 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한 업사이클링 제품을 꼭 써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지만, 업사이클링 제품 소비가 늘수록
기업들도 달라진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The-K 매거진」 독자들에게 “업사이클링 브랜드는 작든 크든 규모와 상관없이
여러 브랜드가 있습니다. 누깍 뿐만 아니라 동료 브랜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고,
기회가 되신다면 성수동 누깍 플래그십스토어에 놀러 오셔서 업사이클링을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업사이클링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