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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로 다시 살기

고려대학교 심리학부 한성열 명예교수
누구나 살아가며 한 번쯤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세상에 홀로 던져진 듯한 외로움과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 같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마저 쉽게 거두게 되는 요즘, 과연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복잡한 마음을, 한성열 교수는 진심으로 듣는다.

정라희 / 사진 이용기

나를 일으키는 긍정의 힘

나이를 먹어도 사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이만큼 살았으면 자기만의 해답이 생길 줄 알았다. 주변에서는 종종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궁금하지만 가장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내 마음’ 이다. 나조차 모를 복잡한 심경을 혹시 누가 알아줄까. 한성열 교수는 미지의 영역인 사람의 마음을 살피며 위로를 건네는 심리학자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한성열 교수는 긍정심리학을 우리나라 대학에서 처음 강의한 인물이다. 미국 시카고 대학교 유학 시절, 「몰입의 즐거움」 저자로 유명한 긍정심리학의 대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교수로부터 직접 박사과정을 지도받았다. 당시 긍정심리학은 심리학계에서 매우 주목받던 분야. 단점보다 장점에 먼저 주목하는 긍정심리학을 연구하면서 그는 ‘긍정의 힘’이 삶에 큰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너는 이런 점이 부족하니 고치면 좋겠다’는 지적을 자주 받습니다. 교육도 부족한 점을 찾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요. 반대로 겸손이 미덕이라며 자신이 잘하는 점을 내세우면 ‘건방지다, 잘난 척 한다’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잘하는 건 안 해서, 못하는 건 힘들어서 재미없는 것 같죠. 그러니 인생이 힘들게 느껴질 수밖에요.”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긍정심리학은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 같은 부정적 감정보다 개인의 강점과 미덕 등 긍정적 심리에 초점을 맞춘 심리학의 한 갈래’다. 같은현상을 두고 긍정적인 사람은 다르게 해석한다. 물이 절반 정도 담긴 컵을 보고 한 사람은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라고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아 있다”라고 인식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 긍정의 시선은 일상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기계적 긍정이 아니라, 생각의 전환을 통한 긍정이다. 이는 그가 심리학자로서, 상담가로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 밑바탕에 깔린 기본 관점이다.

갱년기의 ‘갱’은 ‘다시’라는 뜻이에요. 이 시기에 이르러 인생을 다시 살아간다는 이야기죠.

나를 찾고 싶은 중년의 고민을 살피다

긍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이가 공감한다해도 이를 삶으로 체화하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고, 미래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도 잦아졌다. 흔히 새해를 맞이하면 ‘희망’을 먼저 말하지만, 어쩐지 요즘은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더는 ‘젊지 않다’는 생각이 자신을 옭아매기도 한다. 중년이 되면 마음이 덜 흔들릴 줄 알았는데, 마치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 듯 감정이 요동친다. 사회적 위치에 대한 불안과 신체적 노화로 인한 무력감 등 우울과 불안을 부추기는 요소도 늘어난다.
“중년은 조직에서 나의 한계가 어디인가를 깨닫는 시기입니다. 요즘 대기업 이사진의 평균 연령이 50세 내외라고 합니다. 대략 40대 중반이면 자신이 조직에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젊을 때는 ‘사장은 못 되어도 임원은 한다’는 꿈을 갖는데, 문득 자신이 밀려나는 기분이 들어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100세 시대인 만큼 나이 오십이면 ‘한창때’라고 말하지만, 정작 세상은 중년에게 하루빨리 무대 밖으로 내려오라고 손짓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많은 사람이 자신이 나이 들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내담자에게 자주 듣는 말이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라는 겁니다. 지금은 사회문화가 달라지고 있지만 예를 들어 과거 한국의 많은 여성은 결혼 이후 ‘누구 엄마’로 산 기간이 길었어요. 자신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고 ‘누구 엄마’로 지내다가 자녀들이 성장하고 나면 어느 순간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리고는 하지요.”
‘나를 찾고 싶다’는 중년들의 간절한 물음. 이런 고민은 존재론적 의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중년에는 다양한 삶의 위기가 찾아온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잃고 우울증에 빠지거나, 갱년기를 지나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변화를 겪기도 한다. 배우자의 외도, 이혼 등 가정에 찾아오는 위기도 있다. 한성열 교수는 살아가며 어느 순간 부딪히는 의문을 풀어주고자 글을 쓰고 심리학 콘서트를 열며 중년들이 스스로 자기 마음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지난 9월 출간한 「이제는 나로 살아야 한다」는 중년 이후의 삶에서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법을 안내한다. 그는 어설픈 충고 대신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심리학과 전 생애 발달심리학에 근거해 중년에 부딪히는 다양한 삶의 주제를 풀어냈다.
주인공 사진 책 사진

인생의 중간에서 다시 나로서 ‘제대로’ 살아가기

책의 서문에서 한성열 교수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회고록을 인용한다. “본보기를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명력이 없다. 당신이 자신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누가 당신의 삶을 살겠는가?” 사람들은 인간의 삶을 성장, 유지, 퇴보의 세 단계로 구분하고는 한다. 성장의 정점이 청년이라면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가는 여정을 퇴보로 오해한다는 것. 여기에는 ‘젊음만이 좋은 것’이라는 편견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는 “발달은 변화이지 성장의 개념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설령 신체적으로는 퇴보할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성숙해지는 시기가 바로 중년이다.
“갱년기(更年期)의 ‘갱’은 ‘다시’라는 뜻이에요. 이 시기에 이르러 인생을 다시 살아간다는 이야기죠.”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다시금 ‘나’로 제대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나이 듦’ 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구체적으로 다음 단계를 고민할 수 있다. 그도 대학에서 정년을 앞두었을 때는 자신의 책상이 구석진 곳으로 옮겨지는 꿈을 며칠에 걸쳐 꾸었을 만큼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때부터 고민하며 인생 2막을 준비했다. 그렇게 2017년에 고려대학교에서 퇴임한 이후 사역자를 위한 상담 목회 아카데미 ‘예상’과 일반인이 참여하는 상담과 의사소통 전문가를 양성하는 상담 교육원 ‘만남과 풀림’ 등 교육기관 두 곳을 개설했다. 고려대학교 심리학부 명예교수, 미국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과 데이브레이크 대학교의 석좌교수로서도 여전히 활발히 강의하고 있다. 무대 한가운데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그 시기에 맞는 자기 자리가 있게 마련이다.

심리학은 환경을 바꾸기보다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방법을 달리해주는 학문입니다.

한성열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매일같이 제자들과 소통하는 다정한 선생님이다. 스승에게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고 싶어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고백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감정은 묻어두지 않고 표현할 때 비로소 서로의 마음이 진심으로 통한다. 제자들은 내리사랑을 말하지만, 그는 제자들과 대화하며 젊은 세대의 생각과 가치관을 새롭게 배운다. 이렇게 서로 지지하는 마음들이 세상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심리학은 외부 환경을 바꾸기보다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방법을 달리해주는 학문입니다.” ‘코로나 블루’가 일상 용어가 된 요즘, 한성열 교수는 ‘코로나19가 나를 힘들게 한다’라는 사람들의 반응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곧 심리학이라고 설명한다. 심리학이 책 속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닌 삶을 이해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심리학의 문턱을 낮추고 미래를 잃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신을 찾게 해주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임인년 새해에도 그의 소망을 담은 활동들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어주길 기대해본다. 케이 로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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