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석학들을 만나 학교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는 칼럼 「오늘의 학교」입니다.
교육에 대한 새로운 발상,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심도 있는 이야기들을 만나보세요.
교육을 바꾸고 아이를 성장시키는
공간의 힘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유현준 교수(유현준 건축사사무소 대표)
졸업한 학교의 이름은 달라도 우리 기억 속 교실은 대부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앞뒤로 난 문, 안팎의 경계를 지키는 네모난 창문,
칠판을 향해 정렬된 책상. 아버지가 다닌 학교와 내가 다닌 학교도 과밀(過密)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학교는 바뀌지 않았다. 유현준 교수는 “교육이 바뀌려면 공간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글 이성미 / 사진 김수
효율적인 학교에서 창의적인 학교로의 전환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이 교실 밖으로 나온다. 누군가는 좁은 골목으로 쏙 숨어들었고, 누군가는 벤치에 앉아 친구와 웃고 떠든다. 온몸으로 자연을 받아들인다. 1, 2층 주택 크기로 지어진 교실 동, 그 앞으로 놓인 각기 다른 모양의 마당.
마을을 닮은 이곳은 학교다. 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에 빛나는 ‘스머프 마을 학교 : 송산중학교 증축 프로젝트’는 유현준 교수가 참여해 탄생시킨 학교로 이 곳의 학생들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모양의 꿈을 꾼다.
유현준 교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교 그림
학교가 변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학교의 경계는 집 안으로까지 넓어졌다. ‘공간의 변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같은 학교’에 있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학교는 어떤가?
개인을 위한 공간이란 책상과 의자, 사물함이 전부다. 그마저 사생활은 지켜지지 않는다.
등교는 곧 외부와의 단절을 뜻한다. 딴 세상이다. 창문 벽이 높아 오늘의 하늘조차 제대로 올려다보지 못한다.
학교에서 짜놓은 시간표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부분 같은 수업을 듣는다. 같은 시간에 학교 밖으로 나온다. 학교에는 집단만 존재하고 개인은 없다.
집단만이 존재하는 획일적 공간이 탄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현준 교수는 저서 「공간의 미래」에서 “근대적 개념의 학교 공간은 ‘최소한의 교사로 최대한의 학생을 가르친다’ 는 효율성에 기초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는 획일화, 즉 똑같이 먹고 똑같이 가르치는 것이 ‘평등’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똑같은 공간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산업화의 특징은 표준화와 대량생산에 있습니다. 이것이 학교 공간 구성에도 반영되었죠. 적은 돈으로 많은 사람이 균등하게 공간을 부여받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소득은 늘었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테리어가 바뀌고, 몇몇 교실은 특별실로 바뀌었다. 첨단 기기도 들였다.
책상과 책상 사이의 간격도 더 벌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공간은 갈등을 일으킨다. ‘집단’과 ‘단절’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학교의 벽을 깰 시간
학교 건축에 대한 유현준 교수의 관심도 ‘갈등’에서 시작됐다. 건축가로서 그는 사람의 행동을 공간과 결부 지어 생각한다.
아버지로서 시선이 학교로 향하는 것은 당연했다. ‘우리 아이의 행동 변화가 학교 공간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품자 학교가 달리 보였다.
아니, 자신의 기억 속 학교가 그대로 보였다. 여전히 학교는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종일 벽 안에 모여 있었고,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도, 유연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도 못한 채 자라나고 있었다.
“학교는 사람이 태어나 처음 사회적 활동을 하는 공간입니다. 그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관계를 맺으며 인격체로 성장하죠. 따라서 학교 건축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유현준 교수가 생각하기에 학교를 바꾸는 방법은 간단하다. 벽부터 없애면 된다. 학교와 외부 세계, 공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없애면 된다.
사고와 관계를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교육도 할 수 있다.
먼저 담부터 없애자. 그리고 하나의 공간을 잘게 나누자. 각기 다른 모양, 다른 색으로 건물을 짓고, 마당을 두자.
학년이 바뀌고 수업이 바뀔 때마다 다른 공간을 오가게 하자. 그 안에서 매일 다른 풍경을 만나고, 수업마다 다른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하자.
공간을 바꾸는 순간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학교 벽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에 유현준 교수는 “‘담장’이 아닌 ‘관심’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면 된다”라고 대안을 제시한다.
“담장이 없는 학교는 절대 존재할 수 없을까요? 아닐 거예요. 안전은 담장을 통해 유지될 수도, 관심을 통해 지킬 수도 있습니다. 학교를 마을 안에 품어 누구나 우리 아이들을 지키게 하는 것이죠.
초등학교는 위험해서 안 된다면, 고등학교부터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마저 어렵다면 선택권이라도 주면 좋겠어요. 다양한 모습의 학교를 만들고,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죠.”
온 세상이 곧 캠퍼스인 미래 학교
가까운 일본만 보더라도 학교 건축을 바꾸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 도쿄 후지 유치원은 도넛 모양으로 공간을 설계했다.
중앙 안쪽에 마당을 두고, 유치원 건물을 빙 둘러 지은 모습이 특징이다. 그렇게 하면 외부 세계로부터 안전하고, 모든 교실이 중간에 자리한 자연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동그란 마당은 아이들이 끝없이 달릴 수 있게 한다.
일본 도쿄 후지 유치원의 도넛 모양으로 된 공간 설계
우리나라도 교육이 변하기 위해서는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 교육의 변화는 교사 혹은 건축가의 변화로부터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바뀌어야 한다. 국민이 바라고 요구해야 한다. 공간을 바꾸고 교육을 바꾸기 위한 생각의 전환이, 실천이 필요하다.
유현준 교수가 생각하는, 모두가 함께 만드는 미래 학교의 모습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다. 그가 그리는 학교는 공간의 경계 자체가 없다.
여행 간 타지역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고, 혼자 한 등산도 수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한 장소의 캠퍼스에 국한되어 학업을 할 필요가 없다.”(「공간의 미래」) 학교가 없는 학교, 온 세상이 캠퍼스인 학교, 이것이 유현준 교수가 그리는 미래의 학교다.
유현준 교수가 생각하기에 교사는 “학생에게 이미 내재해 있는 잠재력을 끌어올려 주는 사람”이다. 누구나 마음속 깊은 우물 안에서 물을 끌어 올릴 수 있도록, 그 두레박의 줄을 길게 해주면 된다.
유현준 교수가 건축가이자 교육자로만 살아도 바쁜 일상의 틈을 ‘알쓸신잡’, ‘월간 커넥트’ 속 방송인으로, ‘셜록 현준’ 속 유튜버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공간의 미래」의 작가로, 강연자와 인터뷰이로 채우는 이유도 더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희망’을 꺼내주기 위해서다. 더 좋은 공간을 바라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현준 교수는 오늘도 펜을 든다. 그러고는 쓴다. “멋진 미래를 창조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