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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이 소비가 되는 비거노믹스

v e g a n o m i c s

세계적으로 건강과 환경, 윤리적 가치에 중점을 둔 소비가 늘고 있다. 그중에서도 동물 착취에 반대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가죽 제품이나 양모, 오리 털, 동물 화학 실험에 반대하는 ‘비거니즘’에 대한 관심이 많이 증가했다. 국내 채식 인구도 10년 새 열 배가 늘었고, MZ 세대를 중심으로 한 비거니즘의 실천은 관련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이제 비건 산업은 ‘비거노믹스’라는 이름으로 혁신적 문화 현상의 하나로써 설명되고 있다.

김고금평 머니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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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라이프 스타일, 비거니즘

세계에서 가장 활발히 실천하는 채식주의자를 꼽으라면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를 빼놓을 수 없다. 아내의 영향으로 채식주의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채식을 하자는 ‘고기 없는 월요일’ 캠페인을 펼칠 정도로 채식 권유에 적극적이다. 심지어 동명의 곡도 발표했다.
여기엔 ‘채식을 통한 건강 유지’라는 기본 목적 이외에 동물복지와 친환경이라는 비거니즘(Veganism) 본연의 가치와 철학이 숨어 있다.
그러니까 비거니즘은 채식의 가장 낮은 단계인 적극적 채식주의 이상의 의미가 담긴 셈이다. 동물을 착취해 생산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거부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동물권을 옹호(윤리적 비거니즘)하고 지구 환경을 생각(환경적 비거니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데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환경과 기후위기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거니즘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계층의 까칠한 식단 정도로 보던 시각은 이제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 할 하나의 보편적 의무로 여기게 됐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에 관한 음모’를 공동 연출한 킵 안데르센은 “과거의 비거니즘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지만, 지금의 비거니즘은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재해석한다”며 “비거니즘은 이제 소수의 극단적 가치관이 아닌, 나와 주변의 건강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생각하는 라이프 스타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MZ 세대가 쏘아 올린 비거니즘의 선한 영향력

비거니즘 열풍을 주도하는 이들은 MZ 세대(1981~2010년생)다. 이 ‘가치 소비’ 세대는 상품의 질을 넘어 환경 또는 선한 영향력 등 그 상품이 지닌 가치에 주목한다. 환경오염 문제에 가장 민감한 20~30대가 비거니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채식이 환경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가 운영하는 통계 사이트 (OWID)에 따르면 농·축산업은 인간이 발생시키는 이산화질소의 81%, 메탄의 44%, 이산화탄소의 13%를 차지하는데, 이 중 대부분이 소와 양을 사육할 때 생긴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비건 인구가 늘면서 관련 산업도 종류를 가리지 않고 늘고 있다. 이른바 비거노믹스(Veganomics, 채식주의자의 ‘vegan’과 경제의 ‘economics’의 합성어)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경제 대전망 2019’를 통해 지난 2019년을 ‘비건의 해’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만큼 비건 인구가 계속 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전 세계 채식 인구는 1억8,000만 명이다. 그중 유제품을 비롯해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비건 인구는 5,400만 명 정도다. 한국채식연합이 지난 8월 집계한 국내 비건 인구는 올해 250만 명으로 추산한다. 2008년 15만 명에서 지난해 200만 명으로 13배 이상 늘었고, 해마다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빅데이터 전문 매체 인사이트 코리아가 독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채식을 하는 이유를 묻는 설문조사에서는 △건강(63.1%) △윤리적 이유(52.9%) △환경보호(36.2%) △다이어트(26.3%) △체질(9.7%) 순으로 답했다.
주로 건강을 위해 시작하던 채식 문화가 이제는 동물·환경보호 등 가치를 재조명하는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지표인 셈이다. 기업 역시 ESG(환경·사회·지배 구조)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연스럽게 비거노믹스라는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게 됐다.

주식시장을 사로잡은 비거노믹스

비거노믹스 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한 산업 분야는 식품업계다. 식품 카테고리에서 무엇보다 주목받는 품목은 식물성 고기 ‘대체육’ 시장이다. 미국 리서치업체 CFRA에 따르면 전 세계 대체육 시장은 2018년 약 22조 원에서 2030년 116조 원 규모로 약 427%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2019년 미국의 식물성 고기 제조업체 ‘비욘드 미트’(Beyond Meat)가 뉴욕 증시에 첫 선을 보였을 때 첫날 주가만 163% 상승, 시가 총액은 4조 4000억 원대를 기록해 그해 실적 공개 기업 중 최고치를 찍었다. 빌 게이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유명 인사들이 투자할 정도로 관심이 집중됐다.
국내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지난 2016년 562억 원에 불과했던 식물성 단백질 기반 대체 식품 국내 시장 규모는 2017년부터 연평균 15.7% 성장해 2026년에는 2,553억 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국내 식품업계 중 이에 가장 먼저 진출한 기업은 동원F&B다. 2019년 3월부터 비욘드 미트와 독점 계약을 맺어 대체육으로 만든 ‘비욘드 버거’ 등을 판매했고, 롯데그룹은 통밀, 콩 추출 단백질 제품을 생산하는 대체육 브랜드 ‘제로 미트’를 선보였다. 제로 미트는 출시 1년 만에 판매량 6만 개를 돌파했다.
패션과 뷰티 분야도 앞다퉈 친환경에 나서고 있다. 업계는 단순히 화장품 성분뿐 아니라 친환경으로 제작하는, 이른바 ‘클린 뷰티’ 열풍을 주도한다. 클린 뷰티를 위해서는 안전한 원료를 사용해야 하며 동물실험을 배제하고 친환경 포장재를 쓰는 것이 기본이다.
LF는 대기업 뷰티 브랜드 최초로 비건 화장품 브랜드 ‘아떼’를 론칭했고, 비건 인증을 받은 립스틱 ‘어센틱 립밤’은 출시 이후 여러 차례 품절 사태를 빚었다. 패션업계도 윤리적 소비와 친환경 소재 제품에 골몰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 브랜드 빈폴은 재생 원료를 사용한 친환경 패딩 제품을 내놓았고, 신세계 인터내셔날 역시 이탈리아 비건 패딩 브랜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구찌나 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는 모피 사용 중단을 발표했다. 그 외에도 맥주, 자동차 분야 등 다양한 산업군의 발걸음이 너나없이 비거노믹스를 향하고 있다.
이처럼 비거노믹스가 확대하는 추세지만 문제점도 적지 않다. 비거노믹스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비건 식당은 서울시에 약 30곳이 있지만(한국채식협회), 메뉴당 평균 가격은 1만4,635원으로 이는 평균 외식 물가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 부담스러울 수 있다.
또 대체육 시장과 관련해 정부의 명확한 기준이나 규제가 없어 시장 확장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런데도 비거노믹스는 향후 여러 분야에서 ‘게임 체인저’ 가 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 포스트」가 “채식주의는 단순히 ‘일시적 유행’이 아닌 우리의 미래”라고 말한 이유는 명확하다. 무엇보다 우리의 건강, 나아가 우리가 살고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지구 환경의 책임은 결국 우리 인류에게 있기 때문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