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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공간 혁신, 네모난 교실에서 더 큰 을 꾸게 하다
이제는 학교를 ‘삶의 터전’으로

사회학자 미셸 푸코는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학교 공간이 교도소와 유사하다”라고 한 바 있다. 회색 시멘트로 이뤄진 건물 장벽, 높은 담벼락, 하나같이 네모난 교실 등 학교 건물의 생김새가 묘하게 감옥을 닮았다는 말이다.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학교가 지닌 ‘공간성’을 분석한 것이다. 네모진 공간에 맞춰 사람을 체계적으로 길들여 표준화한다는 것도 시사점을 주고, 공간이 가진 민주성과 비민주성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교육 현장에도 이제 공간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교육 공간의 주인인 학생들에게 교실을 삶의 터전으로, 통제가 아닌 창조의 원천으로 돌려주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김지윤 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기자

공간 혁신의 사례, 섬강초등학교 전경 공간 혁신의 사례, 섬강초등학교 전경

‘학교 공간’도 교육의 일부다

학교 공간에 관한 여러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교육부는 2025년까지 총 18조 5,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그린 스마트 미래 학교’를 추진 중이다. 공간 혁신·에너지 절약· 학생 건강을 고려한 제로 에너지 그린 학교,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을 둔 스마트 교실, 지역사회와 연결된 학교 시설 복합화 등을 사업 방향으로 내세웠다.
2023년부터 부분적으로 도입돼 2025년 전면 도입되는 고교학점제에도 학교 공간 논의는 필수적이다. 고등학생들이 대학생처럼 과목을 선택하고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는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안착하려면 학교 공간에 관한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전반과 오후반이 따로 있고, 겨울이면 교실 한가운데 난로를 피웠던 시절에 학교를 다닌 이들은 ‘그 옛날 학교 공간’에 익숙하다. 당시 학교 모습을 떠올려보면 디자인 요소는 기대할 수 없었다. 교실, 화장실, 운동장 정도만이 우리에게 허락된 공간이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복도, 왁스 칠을 해야 하는 교실 나무 바닥, 겨울이 되면 꽁꽁 언 수돗가 앞에서 청소용 마대 자루를 들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한편으로는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만 잘하면 되지’라는 말에 부합한 아이들만이 ‘그 시절 학교’에 잘 적응한 것도 같다. 학교에서 오직 교실만이 큰 의미를 가졌던 때의 이야기다.
이제 미래 세대를 위한 학교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지난 2019년 ‘혁신학교 10년, 현장을 가다’ 기획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혁신학교를 찾아다녔다.
‘학교 공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기회였다.
당시 혁신학교 도입 10년을 맞이해 공교육 현장을 직접 찾아가 다양한 주제로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경쟁 아닌 협력, 주입 아닌 토론, 배제 아닌 배려가 혁신학교 교육과정의 핵심이고 이를 뿌리 삼아 자기 주도적 역량을 가진 학생을 키워내는 것이 혁신학교의 큰 틀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 혁신’을 이룬 학교를 취재하면서 강원도 원주에 있는 섬강초등학교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당시 전국에서 공간 혁신 프로젝트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강원도교육청이 학교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를 진행했다. 문턱 높고 폐쇄적인 공간이 아닌,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교육 환경이 갖추어져야 민주시민 교육도 가능하다는 취지로 공간 혁신을 위한 ‘개교준비팀’ 등을 운영한 학교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큰 감동을 했다. 학교 공간이 갖는 교육적 의미에 대해 여러 차례 회의를 열고 토론하는 교사들의 모습에서 역동하는 공교육 현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교실, 그 공간의 주인은 학생이다

섬강초등학교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자 한다. 해당 학교는 2019년 3월 문을 열었다. 공간 혁신에 관심 있는 교사 25명을 중심으로 2018년 8월 ‘개교준비팀’이 꾸려졌고, 이들은 건축사무소의 설계 도면을 하나하나 톺아보며 개방적이고 탈권위적인 공간 만들기에 돌입했다.

휴식공간 사진
전시공간 사진
놀이공간사진 층마다 놀이, 전시, 휴식이라는 테마로 설계한 섬강초등학교
개교준비팀은 교장 선생님의 훈화와 운동장에 일렬종대로 서 있는 학생들이 자동 연상되는 구령대부터 없앴다. 대신 아이들이 학기 중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작은 무대를 설계에 반영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공간을 살펴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학교 1층에 통유리로 된 콘퍼런스 공간에서는 주제 통합 수업이 가능하다. 여기에는 어떠한 명령문도 없다. 그 공간은 그저 아이들과 교사들의 활동으로 ‘따로 또 같이’ 채워지는 공간이다. 햇볕이 드는 계단과 2층부터 4층까지 길게 이어진 스토리 스텝에서는 작은 발표회나 버스킹 공연도 열린다. 교실 밖으로 나오면 공부가 끝나는 게 아니라 또 하나의 벽 없는 ‘무한 교실’이 생겨나는 것이다.
개교 후에는 공간 혁신의 방향을 구체화시킬 ‘공간혁신팀’ 이 꾸려졌다. 한 달에 한 번 교사 13명이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들은 각 반에서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해 발제했다. 공간 혁신 경험과 디자인 씽킹 기법(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적 가치, 실용성, 전략적인 대안을 찾는 문제 해결 방식)을 활용해 교내 곳곳에 학생 쉼터와 놀이 공간 등을 만들었다. 이 학교의 동아리방과 음악실, 과학실 등은 하루 수업이 끝난 뒤 더욱 생기가 돌았다.
학교 공간 이곳저곳을 왁자지껄 찾아다니며 활기를 불어넣는 학생들의 모습. 오전부터 종일 학교를 둘러보며 취재한 내가 보기에도 섬강초등학교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였다. 당시 내가 만난 이 학교 아이들은 “여기는 선생님한테 혼나는 무서운 학교가 아니라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같은 학교”라고 말했다. 참 인상 깊었다.
1~2학년 학급이 배치된 2층에는 미로 찾기와 실내 암벽등반이 가능한 어린이 놀이 공간이 설치돼 있었다. 3~4층 복도 빈 곳에는 아이들이 오가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작은 탁자와 의자를 갖춘 쉼터를 마련했다. 학교 건물 가운데 공간은 1층부터 4층까지 원통 형태로 연결해 개방형 구조를 갖췄다. 두 층을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인 스토리 스텝 근처에는 소파가 놓여 있고, 자석 페인트를 칠해놓은 게시판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낙서할 수 있는 대나무 숲이었다.
당시 개교준비팀과 공간혁신팀에서 활동한 한 교사는 “교실 환경은 그 자체가 바로 교육이다. 교단 없는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어깨를 마주하며 토론한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머물고 싶어 하고 즐거워하니 교사들도 힘이 난다고 강조했다. 학교 공간 전반에 퍼진 ‘활력’은 교사 연구모임으로도 이어져 수업의 질이 더욱 높아진다.
예전에는 높은 교탁, 교단이 교실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둘러앉아 있는 곳곳이 중심이 된 것이다. 배움의 공간을 수정·보완해나가며 아이들도 학교를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의 일상을 바꾸는 민주적인 공간

학교 공간 혁신 사례로 언급되는 나라에는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교육 선진국이 있다. 덴마크의 ‘외레스타드 김나지움(Ørestad Gymnasium)*’은 학습자 중심의 교육과정을 꾸려가며 수업의 절반은 교실에서, 나머지 절반은 문이 없는 개방 공간에서 진행한다. 교사가 최소한으로 개입하며 아이들의 공간 자율성을 보장해준다. 노르웨이 ‘링스타베크 스콜레(Ringstabekk Skole)’의 경우 프로젝트 수업을 위한 확 트인 개방형 공간을 학교라 부른다.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로 지정된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는 수업 없는 학생들이 머물 수 있는 ‘홈 베이스’ 공간이 있다. 설계부터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인테리어와 실내 구조부터 일반 교실과는 다르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 시간에 소규모 즉석연주 등이 가능하고, 마루가 마련돼 있어 눕거나 편히 기댈 수도 있다. 스마트폰 충전을 위한 콘센트도 있다. 학교 속 ‘나만의 베이스캠프’로 활용 가능한 공간인 것이다. 이는 부산시교육청이 교육부 지원을 받아 공간 혁신을 독려한 결과다.
미래 학교의 공간 혁신에 관해 많은 사람이 걱정한다. “학교 복도에 소파 놓고, 카페처럼 분위기 좋은 곳 만들어 주면 학업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거 아니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기우일 뿐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공간이 학교에 한 군데라도 있으면 아이들은 학교를 사랑하게 된다.
온종일 지내는 학교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기 시작하면 많은 것이 바뀐다. 아이들도 학교를 ‘힘들게 다녀야 하는 곳’이 아닌 ‘살아가는 터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작은 차이가 학교라는 공간을 더욱 민주적으로 만든다. 아이들은 학교가 더 이상 자신을 통제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된다. 필요와 욕구에 의해 유연하고 재미있게 변할 수 있는 삶의 현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에서의 공간 혁신이란 단순히 노후화한 시설이나 교구를 교체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곳만 그럴싸하게 리모델링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일상이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도록 수평적이고 열린, 민주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 진짜 공간 혁신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

* 「The-K 매거진」 2019. 6월호 ‘The-K 리포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