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살률 2위가 청소년이에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라고 호소하는 아이들에게 심리적인 어려움을 털어놓을 통로가 필요하죠.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마음을 여는 디지털 미술치료
미술치료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환자나 아이들에게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전문기관이 대부분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 지방에서는 더 많은 시간과 더 높은 의료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한국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넘는 데 부담을 느낀다.
“우리나라의 정신 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2015년을 기준으로 15%에 불과합니다. 미국과 뉴질랜드, 호주가 각각 39.2%, 38.9%, 34.7%에 달하는 것과 비교해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지요. 특히 국내 환자들은 심리적인 문제를 인지하고서도 평균 84주가 지나서야 비로소 정신 건강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평균 30주인 영국과 52주인 미국보다 최대 3배 가까이 치료가 늦어지는 셈이지요.”
정신 건강을 치료할 기회가 부족한 한국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김선현 교수. 그가 집중한 것은 접근성 높은 교육용 프로그램 개발이었다. 그렇게 2014년, 색채를 활용한 심리치료 프로그램 ‘심리 본색’을 선보였다. 부담 없이 치료에 입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다.
“한국의 자살률 1위는 노인이고, 2위가 청소년이에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 살아난 아이들의 사정을 들어보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라고 호소합니다.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더욱더 높아요. 사회적인 편견도 있지만, 비용 문제도 크거든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김선현 교수는 치료 프로그램을 담은 앱 개발에 나섰다. 언제 어디서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의학적으로 검증된 치료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2017년 의료적 앱, VR, 게임을 디지털치료제로 미국FDA에서 공식적으로 승인하게 되었다. 2020년 11월에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디지털치료임상센터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주력해 온 일도 정신 및 마음 건강과 관련한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개발이었다. 외부에 노출될까 걱정했던 심리적인 어려움을 털어놓을 통로를 만든 것이다.
병원을 찾기 전에 생애주기별로 정신 건강을 점검하고, 인공지능을 통해 각자에게 적합한 최적의 상담사와 연결해준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이미 외국에서는 원격치료가 활발해지고 있어요. 팬데믹 이전에도 디지털 치료제는 건강관리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고요. 병원에서 진단과 처방을 받지만, 일상생활에서 관리는 스스로 해야 하는데 디지털 치료기기가 복약지도와 관리를 돕는 도구 역할을 해줍니다.”
대중의 지친 마음을 서서히 보듬는 미술의 힘
미술치료는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만 받지는 않는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한 아동과 청소년, 어른들도 미술치료 대상이다.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미술치료 프로그램」, 「사회적응력 향상을 위한 미술치료 프로그램」, 「인지 강화를 위한 미술치료 프로그램」 등 전문가를 위한 책을 꾸준히 써온 김선현 교수가 대중서를 쓴 배경이 여기에 있다.
“국내에 미술치료를 소개하던 초기에도 관련 서적이 일부 번역되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문화나 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무척 많았어요. 초기에는 국내 임상 환경에 적합한 전공 서적을 주로 냈지요. 사회적으로 미술치료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면서 대중을 위한 교양서도 쓰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림의 힘」은 2015년 초판 출간 이후 20만 부 이상 판매될 만큼 대중의 관심을 얻었다. 지난해 새로 책을 정비해 개정판을 내면서는 ‘일, 사람 관계, 부와 재물, 시간 관리, 나 자신’ 등 다섯 가지 주제로 정리했다. 이 주제는 청소년들에게도 다른 방식으로 적용된다. 학생들도 학업과 친구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데다 자아를 탐색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말이 아닌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림은 무수한 단어로도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만들어준다. 자기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려워하던 사람들도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을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면서 심연에 있던 마음의 지도를 찾아 나간다. 김선현 교수는 요즘, 포스트 코로나
* 시대를 염려하고 있다.
입학 후 학교에 거의 가지 못한 학생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단절감을 느끼는 이들의 회복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는 그때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미술치료와 디지털치료가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단번에 나아지기는 어려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게 각자의 마음에 지은 작은 미술관이 사람들을 다시 살게 한다.
* 포스트 코로나 : post(~이후)와 코로나19의 합성어. 코로나19 상황 극복 이후 다가올 새로운 시대·상황을 이르는 말
김선현 교수 저서
「그림의 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오른쪽)
「그림의 힘 II」 : 합격을 부르는 최적의 효과(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