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생각 나누기 아이콘 이미지

배움 더하기

오늘의 학교

쉼터같은 으로
아이들의 복잡한 마음을 다독입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디지털치료임상센터
김선현 교수
사람은 살아가며 다양한 감정을 겪는다. 기쁘고 행복할 때도 있지만, 우울하고 짜증 나는 순간에도 수시로 부딪힌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을 모두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만만하지 않은 세상을 살다 보니 마음을 누르는 게 습관이 되었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 고여 아픔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닫히고’ ‘다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김선현 교수는 그들 앞에 그림을 내놓는다.

정라희 / 사진 이용기

그림을 그리면서 눈에 띄게 밝아지고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사람들을 보았죠. 이때부터 미술로 희망을 전하는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림 그리는 사진 주인공 사진 1

마음을 치료하는 미술에서 희망을 보다

미술을 전공하고 작가로 활동하던 김선현 교수가 미술치료에 관심을 둔 때는 1993년이었다. 자신에게 미술을 배우던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눈에 띄게 밝아지고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모습을 보면서, 미술이 지닌 치유 효과를 이미 느낀 터였다. 그즈음 자폐 아동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자폐 아동을 비롯한 장애인들은 대부분 집에서 머물렀고, 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부족했다. 미술치료 개념은 물론 용어조차도 생소했던 시절이었으나, 작품을 완성하며 만족감을 얻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술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아직 국내에 ‘아트 테라피(Art Therapy)’라는 용어가 소개되기 전이었어요. ‘미술로 무슨 치료를 해?’ 하고 되묻는 분도 많았지요. 집에서나 미술학원에서 그림만 그려도 되지 않느냐고, 굳이 전문기관에 가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분이 대다수였습니다. 내담자가 그린 그림을 편향적으로 해석한 방식을 미술치료라고 여기는 경우도 잦았고요. 그럴수록 더욱더 의료기관에서 검증한 의료 효과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신이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독일과 일본, 미국 등 선진국의 의료기관에서 예술치료 과정을 이수하면서 검증된 치료법을 국내 실정에 맞게 소개했다.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이를 임상에 적용하면서 느끼는 보람이 컸지만, 선구자의 길이 그렇듯 오해와 편견을 깨트리는 부담도 함께 짊어져야 했다.
미술치료는 미술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불안한 감정을 완화하고 병을 고칠 수 있도록 보완하며 지원하는 일련의 과정을 가리킨다. 이미 선진국 의료 현장에서는 보편적인 의료기법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 창작 활동을 제시하며 환자의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환자 스스로 마음을 돌볼 수 있도록 정서적으로 돕는다. 한편으로 좋은 작품을 감상하며 감정을 이입하고 심리 상태를 살펴보는 방식도 미술치료 갈래 가운데 하나다.
한국의 자살률 2위가 청소년이에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라고 호소하는 아이들에게 심리적인 어려움을 털어놓을 통로가 필요하죠.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마음을 여는 디지털 미술치료

미술치료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환자나 아이들에게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전문기관이 대부분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 지방에서는 더 많은 시간과 더 높은 의료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한국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넘는 데 부담을 느낀다.
“우리나라의 정신 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2015년을 기준으로 15%에 불과합니다. 미국과 뉴질랜드, 호주가 각각 39.2%, 38.9%, 34.7%에 달하는 것과 비교해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지요. 특히 국내 환자들은 심리적인 문제를 인지하고서도 평균 84주가 지나서야 비로소 정신 건강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평균 30주인 영국과 52주인 미국보다 최대 3배 가까이 치료가 늦어지는 셈이지요.”
정신 건강을 치료할 기회가 부족한 한국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김선현 교수. 그가 집중한 것은 접근성 높은 교육용 프로그램 개발이었다. 그렇게 2014년, 색채를 활용한 심리치료 프로그램 ‘심리 본색’을 선보였다. 부담 없이 치료에 입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다. “한국의 자살률 1위는 노인이고, 2위가 청소년이에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 살아난 아이들의 사정을 들어보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라고 호소합니다.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더욱더 높아요. 사회적인 편견도 있지만, 비용 문제도 크거든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김선현 교수는 치료 프로그램을 담은 앱 개발에 나섰다. 언제 어디서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의학적으로 검증된 치료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림 그리는 사진 주인공 사진 2
2017년 의료적 앱, VR, 게임을 디지털치료제로 미국FDA에서 공식적으로 승인하게 되었다. 2020년 11월에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디지털치료임상센터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주력해 온 일도 정신 및 마음 건강과 관련한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개발이었다. 외부에 노출될까 걱정했던 심리적인 어려움을 털어놓을 통로를 만든 것이다. 병원을 찾기 전에 생애주기별로 정신 건강을 점검하고, 인공지능을 통해 각자에게 적합한 최적의 상담사와 연결해준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이미 외국에서는 원격치료가 활발해지고 있어요. 팬데믹 이전에도 디지털 치료제는 건강관리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고요. 병원에서 진단과 처방을 받지만, 일상생활에서 관리는 스스로 해야 하는데 디지털 치료기기가 복약지도와 관리를 돕는 도구 역할을 해줍니다.”
어플 사용 사진 1 어플 사용 사진 2

대중의 지친 마음을 서서히 보듬는 미술의 힘

미술치료는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만 받지는 않는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한 아동과 청소년, 어른들도 미술치료 대상이다.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미술치료 프로그램」, 「사회적응력 향상을 위한 미술치료 프로그램」, 「인지 강화를 위한 미술치료 프로그램」 등 전문가를 위한 책을 꾸준히 써온 김선현 교수가 대중서를 쓴 배경이 여기에 있다.
“국내에 미술치료를 소개하던 초기에도 관련 서적이 일부 번역되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문화나 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무척 많았어요. 초기에는 국내 임상 환경에 적합한 전공 서적을 주로 냈지요. 사회적으로 미술치료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면서 대중을 위한 교양서도 쓰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림의 힘」은 2015년 초판 출간 이후 20만 부 이상 판매될 만큼 대중의 관심을 얻었다. 지난해 새로 책을 정비해 개정판을 내면서는 ‘일, 사람 관계, 부와 재물, 시간 관리, 나 자신’ 등 다섯 가지 주제로 정리했다. 이 주제는 청소년들에게도 다른 방식으로 적용된다. 학생들도 학업과 친구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데다 자아를 탐색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말이 아닌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림은 무수한 단어로도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만들어준다. 자기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려워하던 사람들도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을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면서 심연에 있던 마음의 지도를 찾아 나간다. 김선현 교수는 요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염려하고 있다. 입학 후 학교에 거의 가지 못한 학생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단절감을 느끼는 이들의 회복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는 그때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미술치료와 디지털치료가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단번에 나아지기는 어려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게 각자의 마음에 지은 작은 미술관이 사람들을 다시 살게 한다. 케이 로고 이미지

* 포스트 코로나 : post(~이후)와 코로나19의 합성어. 코로나19 상황 극복 이후 다가올 새로운 시대·상황을 이르는 말

주인공 저서 이미지 김선현 교수 저서
「그림의 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오른쪽)
「그림의 힘 II」 : 합격을 부르는 최적의 효과(왼쪽)